‘플랫폼 창동 61’의 역설

2016.04.29 20:46 입력 2016.04.29 21:04 수정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지난 29일 서울 도봉구 창동역 1번 출구에 ‘플랫폼 창동 61’이 개관했다. 컨테이너를 쌓아 음악, 패션, 음식 등 다양한 장르를 수용하는 문화예술 공간이다. 음악과 관련된 시설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3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탠딩 공연장이 있고 녹음실, 합주실, 스튜디오 등 음악 창작에 필요한 시설이 올인원으로 갖춰져 있다. 시나위의 신대철, 이한철, 아시안 체어샷, 잠비나이, 숨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들이 우선 입주하고 20개 팀을 추가로 모집한다고 한다. 그동안 서울시가 추진해온 대중문화 관련 정책 중 가장 구체적이다. 새로운 음악 생태계 구축을 위한 플랫폼인 셈이다. 근 10년간 인디음악과 관련된 지원 정책은 시설만 갖춰놓고 소프트웨어를 고민하지 않았다면, 이 프로젝트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

[문화와 삶]‘플랫폼 창동 61’의 역설

이 계획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비대칭적이고 폐쇄적이며 망가지기까지 한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장르 음악이 설 자리는 없다. 혁오, 10센치 등 음원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음악가들의 지분은 아이돌과 오디션 프로그램 가수에 비하면 ‘기타’로 분류하기도 민망할 만큼 미미한 게 현실이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하향식으로 대중에게 살포되는 음악과 달리, 바닥에서 음악 그 자체의 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야 하는 음악인들에게 이런 지원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철강산업의 퇴조와 함께 쇠락하기 시작한 영국의 셰필드시가 1988년부터 시행한 문화산업지구제가 후일 펄프, 악틱 몽키스 등 지역 출신의 스타 밴드를 낳은 사례는 지역 문화정책이 시장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음악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플랫폼 창동 61’의 성공을 바라는 이유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한국에서 더 이상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하위 문화 신(scene)이 자생적으로 탄생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쎄시봉으로 대표되는 1970년대 명동의 청년 문화를 시작으로 1980년대 신촌 언더그라운드, 그리고 1990년대 홍대앞 인디음악의 탄생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이 있다. 명동은 산업화로 인한 경제성장 시기에 청년기를 누린 전후세대의 놀이문화로 시작했다.

5공화국 정권 출범과 함께 대학 정원이 대폭 늘어나면서 대학교가 밀집한 신촌에서 새로운 블루스와 록이 탄생했다. 1968년부터 1974년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들이 이미 사막화되기 시작한 신촌을 떠나 근처의 홍대앞에서 펑크와 모던 록을 중심으로 한 인디 신을 생성했다. 투박한 분류지만 경제적 환경과 인구 분포가 하위문화의 장소 이동을 견인한 셈이다. 하나를 더한다면 서구 음악 흐름의 변화가 동시대에 이식되면서 새로운 수요를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홍대앞 이후 문래동, 석관동 등지에서 새로운 신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확장되지 않았다. 연남동, 경리단길처럼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동네에는 하위문화가 없다. 30대 이상을 중심으로 한 먹고 마시는 소비문화만 있을 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나는 생각한다. 결국 ‘쪽수’와 경제의 문제라고. 새로운 청년문화를 생성할 수 있는 연령대는 인구절벽 앞에 서 있다. 게다가 그들이 처한 현실은 88만원 세대를 지나 N포세대라는 용어로 정리된다. 여가는커녕 생존도 벅찬 세대다. 새로운 문화로 주장과 욕망을 펼칠 수도 없고, 설령 할 수 있어도 호응할 수 있는 아군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플랫폼 창동 61’의 탄생은 한국 사회에서 하위문화 신의 탄생이 기존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단계에 와 있음을 보여주는 역설이 아닐까 싶다. 스타가 되기 위해 주체와 자아를 거세하고 아이돌이라는 이름의 컨베이어 벨트를 통과해야 되듯, 오디션을 통해 기성세대의 틀에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재단당해야 하듯, 어쩌면 장르 음악(또는 하위문화)도 비슷한 운명에 처해 있는 게 아닐까. 젠트리피케이션의 절정에 와 있는 홍대앞 이후의 대안을, ‘플랫폼 창동 61’은 마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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