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거짓말

2016.06.01 21:00 입력 2016.06.01 21:05 수정
손홍규|소설가

아버지와 나는 여느 부자가 그렇듯이 데면데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십 여 년을 부자지간으로 살아오면서 툭 터놓고 말을 나눈 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몇 번 내게 거짓말을 하기도 했는데 기억에 남는 거짓말 가운데 하나는 초등학생 시절 유리 겔러가 한국을 방문해서 초능력 쇼를 할 때의 일이었다. 숟가락 구부리기에 실패해 풀 죽었던 나는 고장 난 손목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초능력에 기대를 걸었다.

[문화와 삶]아버지의 거짓말

마침 우리 집에는 고장 난 ‘스텐 손목시계’가 하나 있었고 나는 그걸 찾아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유리 겔러를 따라 ‘움직여!’하고 소리 질렀다.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마구 흔들어대자 바늘이 움직였던 거다. 아버지는 흔흔하게 웃으면서 장하다고 말해줬는데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칭찬이 썩 달갑지가 않았다. 그 손목시계가 원래 흔들어 대면 로터라는 추가 움직여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종류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쨌거나 초능력을 확인한 뒤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나는 아버지에게 그 시절 시골집에 굴러다니는 소품이라기엔 무척 세련된 문명의 기기처럼 여겨지던 손목시계의 사연을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때의 일인데 어느 날 포탄이 바로 옆에서 터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전우는 죽고 당신만 살아남았으며 그 손목시계는 전우의 것인데 멈춘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이 바로 포탄이 떨어진 시간이라는 거였다. 베트남, 전쟁, 참전, 포탄, 전사 등등이 불러일으키는 낯설고 이국적인 이미지도 강렬하긴 했으나 무엇보다 어린이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른의 세계를 처음으로 엿본 듯해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전까지 알던 아버지가 아닌 것만 같았다.

나는 이 사연을 자랑삼아 친구들에게 풀어놓곤 했으며 친구들은 아버지를 영화의 주인공처럼 추켜올려주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 정도쯤이야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물론 세월이 흐른 뒤 나는 아버지가 베트남은커녕 제주도에도 가본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가장 최근의 거짓말은 십 년 안쪽의 일인데 그때 아버지는 추락사고로 목뼈에 심각한 금이 가서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담당의가 ‘까다로운 수술’이라고 말했을 때 단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수술이라는 뜻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수술을 하다 환자가 죽을 수도 있는 수술이라는 말로 들렸다. 환자의 보호자 입장이라면 아마도 누구나 나처럼 받아들였을 것이다. 나는 수술을 앞둔 아버지에게 집도의가 경추 수술 부문에서는 최고의 외과의며 그런 사람이 간단한 수술이라고 말했으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라는 둥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니까 사실 나도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했던 셈인데 아버지는 그 거짓말이 진짜냐는 눈빛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살면서 처음으로 보게 된 고분고분한 아버지였다.

이윽고 수술 시간이 다가왔다. 이동침대에 아버지를 옮겨 뉘고 조무사와 함께 마취실로 향했다. 마취실 입구에서 조무사는 내게 보호자는 마취실에 들어갈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조무사가 어디론가 가버린 틈을 타 나는 마취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동침대 옆에 선 채 아버지 손을 잡았다. 강제로 쫓아낼 때까지는 아버지 옆에 있을 작정이었다. 십 여 분이 흘렀다. 그사이 내가 아버지의 손을 쥔 건지 아버지가 내 손을 쥔 건지 알 수 없게 돼 버렸다.

마취의는 내가 왜 거기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가라고 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아버지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고 아버지의 손을 통해 당신의 두려움과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아버지, 괜찮으시죠? 아버지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 괜찮다. 말로는 그렇게 했으나 내 손을 쥔 아버지의 손은 단단하다 못해 딱딱하게 굳어 그 손을 놓는 순간 내 몸의 일부마저 떨어져 나갈 듯했다. 그 순간 나는 아버지가 내게 했던 거짓말들이 사무치게 그리웠고 이 우아하고 품위 있는 거짓말이 마지막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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