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의 나라, 수심의 나라

2016.06.03 21:13 입력 2016.06.03 21:16 수정
김인국 ㅣ 청주 성모성심성당 주임신부

성심성의껏 할 때의 성심(誠心)과 다르고, 명심보감의 성심(省心)과도 다른 성심(聖心), 그 이름을 나누어 갖는 기관이 여러 곳이다. 가톨릭의 수도회들을 필두로 많은 학교와 병원들이 이 이름을 쓰고 있으며, 이 이름을 빌려 쓴 덕인지는 모르지만 크게 성공한 빵집도 있다.

[사유와 성찰]성심의 나라, 수심의 나라

예수의 마음을 일컫는 이 낯선 말마디가 조선 경향 각지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우리의 타고난 성품과 무관하지 않다. 천주교 박해기와 그 이후 이 땅을 찾아온 서양 신부들은 “이 나라 사람들은 날 때부터 그리스도인”이라며 탄복하곤 했단다. 죄를 씻는 세례성사가 따로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학생 시절,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는데 1911년 2월17일부터 6월24일까지 129일간 조선에 머물다간 어느 독일 선교사의 조선 여행기를 읽으며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조선인은 꿈꾸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연을 응시하며 몇 시간이고 홀로 앉아 있을 수 있다. 산마루에 진달래꽃 불타는 봄이면 지칠 줄 모르고 진달래꽃을 응시할 줄 안다. 잘 자란 어린 모가 연둣빛 고운 비단 천을 펼친 듯 물 위로 고개를 살랑인다. 색이 나날이 짙어졌다. 조선 사람은 먼 산 엷은 초록빛에 눈길을 멈추고 차마 딴 데로 돌리지 못한다. 그들이 길가에 핀 꽃을 주시하면 꽃과 하나가 된다. 조선인은 모든 것 앞에서 다만 고요할 뿐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중에서)

제 나라에서 하인으로 몰락한 처지에도 조선인의 풍채와 용모는 여전히 의젓하였다. “그들은 크고 날씬하며 보무도 당당하다. 어느 모로나 제왕의 풍모다. 발에 딱 맞는 짚신을 신어 걸음걸이가 우아한데, 일본인은 끈 달린 나무 샌들에 엄지발가락을 끼워 넣고 다녀서 질질 끌거나 종종걸음 칠 수밖에 없다.” 여간해서 꽃을 꺾지 않는, 차라리 내일 다시 보고 또 볼지언정 나뭇가지를 꺾어 어두운 방 안에 꽂아두는 법이 없는 조선 사람들을 보며 감탄을 더해가던 검은 옷과 긴 수염의 독일인은 보신각종에 얽힌 옛 서울의 관습을 듣고서는 거의 기절초풍하고 만다. “저녁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남자들은 절대 바깥출입을 해서는 안된다. 이들이 서둘러 귀가하여 거리를 비워주면 아녀자들은 방해받지 않고 편안히 외출할 수 있었다.”

경박한 일본 예절에 밀려 조선의 흐뭇하고 지엄했던 관습이 무너져 내리는 현실 앞에서 이방인 순례자는 발을 동동 굴렀다. 오늘 우리가 봐도 그렇지 않은가. 길에서 부녀자와 마주치면 스스로 비켜서서 더 좋은 길을 터 준다거나, 아무리 최하층 신분이라 하더라도 여자에게는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부친상과 똑같이 상복을 입고 삼년상으로 추모하는 그런 마음을 어느 하늘 아래서 다시 만날 수 있겠는가. <열하일기>를 방불케 하는 저 꼼꼼하고도 방대한 여행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희는 성심의 나라로다. 세상천지에 다시없는 성심의 겨레로다!”를 반복하면서 잊고 지냈던 본디 모습을 어서 되살려내라고 다그친다.

나라가 사위어가는 시절에도 쾌활한 색상과 고요하고 늠름한 자태를 잃지 않던 옛사람들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너무나 이상하고 초라해졌다. 강남역에서 젊은 여자가 죽고, 열하루 만에 구의역에서 어린 노동자가 죽었다. 다시 나흘 후에는 또 다른 역을 만들던 열넷의 일용노동자가 죽고 다쳤다.

2009년 이래 “승객 여러분이 내릴 다음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라는 소리를 재수 없는 참언으로만 여겼는데 모든 게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 사람끼리 다시는 그러지 말자는 비상경보가 탑마다 굴뚝마다 춘하추동 울려댔으나 아이들은 바다에서 죽어갔고, 어머니와 아기들은 영문도 모른 채 안방에서 시들어갔다.

성 베네딕도회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총원장 노르베르트 베버, 떠날 때 “대한만세!”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던 그는 슬픈 나라를 영영 잊을 수 없었는지 십사 년 만에 다시 조선을 찾아왔다. 아예 촬영기사까지 대동하고서. 덕분에 백 년 전 우리네 삶이 한 편의 기록영화로 남아 있다. 사뭇 경탄어린 시선으로 조선을 기록하던 손님은 오늘의 번영 대한민국을 향해 그때 못한 대한만세를 불러줄까.

내년에 우리는 민주화 30년, 후년에는 정부수립 70년, 그다음 해에는 삼일운동과 공화주의 선포 백주년을 맞는다. 성심을 팽개치고 수심으로 가득 찬 수심(獸心)의 나라가 되려고 그렇게 이 악물고 달려왔을까? 모레는 현충일. 자신을 국가라고 믿는 자들은 현충탑 앞에서 엄숙하게 고개를 숙이겠지만, 시민들은 지금 노란 포스트잇 한 장을 들고 여기저기 불쑥불쑥 솟아나는 또 다른 추모의 탑 앞에서 부르르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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