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의 인성교육

2016.06.17 20:41 입력 2016.06.17 20:51 수정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칼럼]가수의 인성교육

세계 음악시장에 깃발을 휘날리는 K팝 퍼레이드의 펀치력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해외에서 열리는 K팝 가수들의 공연열기를 보면 아직 기세가 꺾인 것 같지는 않다. 미국 배우 엠마 스톤이 ‘훌륭함을 넘어선 중독’이라고 표현할 만큼 서구도 인정하는 한류 대중음악은 그들에게 도대체 뭐가 매혹적일까. 흔히 K팝의 성공 요인으로 역동적인 군무, 가창 역량, 빼어난 비주얼 그리고 기획사의 프로듀싱 기술 등 크게 네 가지가 꼽힌다.

음악관계자들은 요즘 들어 이것들에 ‘가수의 인성’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한다. 해외에서도 두꺼운 팬 층을 보유한 톱스타들에게 사회적 물의와 추문이 잇따르면서 인성교육이란 화두가 동시 부상하고 있다. 연예계에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것은 유행의 변화나 창의의 후퇴가 아니라 ‘사고 한방’이다. K팝이 내수를 넘어 어엿한 ‘글로벌 상품’으로 뛰어오른 상황에서 스타의 사건·사고는 우리뿐 아니라 해외 고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외국의 K팝 팬들조차 최근 제이와이제이(JYJ) 박유천의 성폭행 피소 뉴스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일본의 혐한(嫌韓) 시위에는 동조하지 않아도 적지 않은 일본의 기성세대가 K팝에 비호감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은 음악적으로 감동을 못 느끼는 것이겠지만 만약 그 ‘비호’가 가수의 도덕성과 인성 부재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면 치명적이다.

스타 가수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중·고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다. 청소년들은 또한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스타 ‘따라쟁이들’이다. 하지만 일부 스타의 사례로 알 수 있듯 공인으로서의 모범은커녕 성범죄, 사기, 뺑소니, 유흥 행각 등 지극히 비교육적인 일탈이 빈번히 매체를 장식한다. 현재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그 못지않게 TV 쇼프로를 통해 비치는 아이돌 댄스가수들의 지나친 노출, 선정적 동작, 짙은 화장 등을 우려한다.

게다가 공중파 및 종편 예능프로에 출연한 인기가수와 연예인들의 대화에는 무의식 중에 성희롱적인 언어, 외모지상주의적인 시선, 툭툭 내뱉는 투의 발언 등등 상대에 대한 공격성이 산재한다. 방송의 시청률 제고에 기여할지 모르지만 이런 행태가 학교의 인성교육에는 급속도의 타격을 가한다. 서울 오금고 박경전 교장은 “아무리 교육현장에서 인성함양에 애쓴다 해도 ‘비인성교육적인’ 상황이 매체를 통해 여과 없이 전달되면 학생들은 고스란히 영향을 받는다. 이런 현실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박 교장은 학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K팝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TV 쇼와 예능프로가 청소년교육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팝의 체계적 인재양성과 관련해 학교교육이 감당해야 할 대목은 바로 ‘인성교육’이다. 사실 근래 들어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는 학교는 없다.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위한 외부전문가 특강, 방과후교실, 진로 멘토와의 만남, 외부 관련기관 견학 등 학교마다 다채로운 프로그램 마련에 골몰한다. 일선 교사들은 기획사의 연습 훈련과 스케줄을 이유로 지망학생들이 요청하는 ‘결석’을 원천적으로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학교 출석횟수가 줄어들면 인성교육의 부재는 불 보듯 훤하다. 하지만 이미 공부에 마음이 떠난 학생들을 무조건 입시과정에 묶어 놓을 수는 없다. 교과과정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그 ‘결석하지 않은’ 예비예술가들을 위해 ‘사외교사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 면목고 김소진 교사는 “대중음악 지망생들이 학교에서는 겉돌고 학원에만 목매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중·고교 교육현장에 대중음악 지도자가 배치돼 하나의 교육과정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발굴하는 여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류와 K팝이 부상한 십수년 전부터 줄곧 가수의 인성교육 문제가 제기돼 왔다. 백년대계는 아니더라도 10, 20년을 내다보는 근본적 접근이 안 되면 그것은 방치고, 방치는 병을 낳는다. K팝이 양호한 건강상태에서 점점 멀어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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