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링, 혹은 ‘빡치는’ 말들

2016.09.19 20:54 입력 2016.09.19 20:56 수정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미러링을 극단적으로 정의하면 남녀만 바뀐 일베다? 그렇게 정의할 수도 있겠다. 그래 그게 미러링이다. 그럼 혐오스러운가? 그런 듯하다. 요즘 여성혐오 현상을 미러링한 온라인 사이트 메갈리아, 워마드의 언어에 불쾌하고, 불편하고, 혐오스럽고, ‘격분’을 느끼는 남자들(여자들)이 많다. 아, 그렇다면 그것은 미러링이 의도한 사회적 효과를 낸 것이다. 애초에 미러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니. 거울반사! 이때껏 이 사회가 여성을 두고 이렇게들 말하고 행동해왔지를 반사해서 보여주는 것, 그래서 혐오스럽게 만드는 것. 사회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책 제목을 빌리자면 격분시키는(빡치게 하는) 말들.

[세상읽기]미러링, 혹은 ‘빡치는’ 말들

바로 이것이 이때껏 여성들이 혐오스럽게 느꼈던 현실언어들이다. 아무 근거도 없이, 타당한 이유도 없이, 여성에게는 그리 표현해도 되고, 능멸해도 되고, 희롱감으로 삼아도 되는. 심지어 실제의 ‘실연’으로 실천하기도 하는, 그래서 여성을 강간한다는 용어를 ‘골뱅이’라 표현하고, 작당해 여성을 약취 유인해 집단강간하기도 하는 구체적인 행위로까지 옮기는 것, 그것이 우리가 요즘 흔히 ‘여성혐오’라고 지나치게 넓혀서 부르는 말과 행동이다.

물론 최근 쏟아진 모든 미러링 글들과 이미지들이 의도적으로 ‘미러링’ 전략을 구사했는지, 아니면 감정적 배설물인지, 그 정도를 지나쳐서, 말하자면 모방범죄처럼 번졌는지 선을 긋기 어렵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그동안 수없이, 그리고 끝없이 주로 온라인에서 여성을 상대로 벌어져온 증오의 언행들과 닮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거울이미지처럼.

하지만 그것은 현실화되지 못하는 거울이미지 혹은 반사일 뿐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 행위와 기존의 여성증오 언행이 다른 점이다. 미러링은 언어를 통해서 대체로 남자들이 하던 짓들을 그대로 돌려주고 있지만, 아직은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고 있다. 아니 애초에 이것들은 거의 현실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거울’이미지인 것이다. 미러링이 아무리 쏟아진들, 현실에 범람하는 것들은 거울이미지가 아니라 여성혐오, 여성증오, 여성에 대한 성희롱, 그리고 매일 벌어지는 성폭력들이다. 그 현실이 거울을 통해서 반사되어, “거울아 거울아 내가 가장 이쁘니?”가 아니라, “거울아 거울아 그동안 여성들을 상대로 어떤 짓들이 벌어지고 있었니?” 혹은 “거울아 거울아 내가 어떤 여성혐오 짓들을 묵인하고 살았니?”라는 질문에 답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미러링이 아무리 독하고 독해서 가장 끔찍한 일베의 언어폭력과 같아질지라도, 현실은 여전히 남성중심적이고, 남성이 여성을 소수자라고 여기며 함부로 해도 된다고 믿는 세상이다.

또 그 현실은 사회심리적인 상태와 행위인 ‘여성혐오’만으로 구성되지도 않는다. 여성혐오를 말할 때 알아야 하는 것은 여성혐오는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 위계 시스템의 구성요소일 뿐이라는 점이다. 현실의 사회구조가 있고 여성혐오가 있는 것이다. 여성혐오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도 되도록 만드는 것은 현실의 젠더 권력관계의 불균형이고, 사회적 차별이라는 구조다.

최근 ‘여성혐오’의 문제 설정은 사회적 차별이 단지 사회구조적일 뿐 아니라, 관계적이고 나아가 미시적이며 문화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명징하게 드러냈다. 그 점에서 ‘혐오’와 ‘증오’의 집단심성을 드러내는 것은 발본을 향한 첫걸음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는 차별의 심층 구조를 그 표층에 드러나는 현상으로 환원시키거나 사회 미시적 관계의 문제로 좁혀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혐오는 사회적 차별 속에서 자리 잡는다. 혐오가 차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이 있기에 혐오가 생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국에는 거울을 박차고 나와 미러링을 넘어서 이 젠더적 현실을 재구성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남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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