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의 소통역량을 검증하자

2016.09.20 21:21 입력 2016.09.20 21:23 수정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추석 연휴를 전후하여 차기 대선 후보들에 대한 신문과 방송의 기사가 넘쳐났다. 오랜만의 고향집 가족 모임에서도 잠재적 대선 후보들이 제법 술안주가 되었다. 기사를 읽다 보니 잠룡(潛龍)이라는 단어가 눈에 거슬린다.

[세상읽기]대선 주자의 소통역량을 검증하자

‘용(龍)’은 무슨 용인가? 유동근이 주연한 드라마 <용의 눈물>을 말하는 것이라면, 민주국가의 대통령을 왕조시대의 국왕에 갖다 붙이는 꼴이니 터무니없다. 19대 대선에서 우리는 ‘군주’를 뽑는 것이 아니다. 아니 18대 대선에서도 우리는 군주를 뽑은 것이 아니다.

잠재적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도 여론조사의 결과도 발표되었는데, 아직 출마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는 사람들도 후보군에 들어가 있는 것이 의아하다. 언론이 일찌감치 권장 후보군의 목록을 만들어 주고 있는 셈인가?

아무튼, 여론조사는 대개 ‘어느 당을 지지하는가?’, ‘누구를 지지하는가?’ 하는 단순 질문으로 구성되고 답변은 이미지와 느낌으로 결정된다. 능력이 있어 보인다, 친근하다, 정치적 취향에 맞는다, 다른 사람이 싫다는 것이 선택의 이유이다. 막연한 이미지에 의해 답변이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이미지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민주사회에서 국민의 선택은 중요하다.

그러나 막연한 이미지에 의한 선택을 냉철한 평가에 근거한 선택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선거 때마다 후보자가 내세운 공약이 SMART 원칙(Specific 구체성, Measurabie 측정가능성, Attainable 달성가능성, Realistic 현실성, Time based 시기적절성)에 맞는지를 검증한다.

그런데 공약(公約)은 으레 공약(空約)이므로 후보자의 내면적인, 근본적 자질이 더 중시될 필요가 있다. 과거에도 대선 후보의 자질 검증은 어떠한 형태로든 이루어졌다. 하지만 대개는 겉핥기였다. 경제가 어려울 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경력을 가진 후보를 선택한 결과가 무엇인가?

민주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이 막연한 이미지에 의해 후보자를 선택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우민화(愚民化)이다. 2020년대를 열어야 하는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그 집단이 갖추어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를 먼저 밝히고, 이 판단의 준거에 따라 지지후보를 선택하도록 국민을 도와야 할 것이다.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정부의 구체적 모습에 관한 공감대 위에서 19대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역량을 정의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지도 조사는 그다음의 일이다.

19대 대통령과 그 집단이 갖추어야 할 역량은 많다. 청렴성과 도덕성, 남북문제를 포함하여 복잡다기한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를 헤쳐 나갈 역량, 경제회복과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역량 등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100여 개는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의 경험에 의하면 이 모든 것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필수적 역량은 참여적 대화를 통해 소통과 공감을 이루어 내고, 여야와 지역을 초월한 합의를 이끌어 내며,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적대와 갈등을 해소하는 능력이다. 한 사람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없으므로 외교, 국방, 경제 등 나머지 전문성은 참모와 내각으로부터 빌리면 된다.

요즘 널리 화두가 되고 있는 연정(聯政), 협치(協治)도 소통과 공감에서 오는 것이다. 요컨대 절차적 민주주의를 구현할 철학과 능력이 19대 대통령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준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결과 이전에 절차의 실패로부터 오는 것이다. 물론 결과에 만족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절차적 역량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누구나 선거공약에서 이것을 내세우겠지만, 문자 그대로 헛된 공약(空約)으로 끝나고 만다. 절차적 민주주의 역량을 갖추었는지는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정당 대표, 국제기구의 수장, 기업 대표, 대학원장, 도지사, 시장 등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얼마나 충실하게 구현해 왔는지, 참여, 경청, 소통, 공감, 합의의 원칙과 철학을 얼마나 중시해왔는지를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파고들면 살아남을 후보가 거의 없을 것 같아 걱정이기는 하다. 아무튼 철학과 내면적 진정성은 삶의 역사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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