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살라에서

2016.09.29 21:23 입력 2016.09.29 21:32 수정

“법회가 열리는 때는 큰길 양쪽으로 차가 막혀 5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서 있는 적도 있어요. 매연도 많고요….” “아니 이곳에 매연이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곳은 해발 높이가 1900m 정도로 한라산과 같지 않은가. 운무가 걸린 산자락에 앉아 세상의 모든 번뇌를 털어버리고, 마치 수행자가 된 듯 영성이 깃든 시간을 꿈꾸었건만 기대가 깨졌다.

[로그인]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을 추진하는 스님, 재가자들과 이달 초 인도 북부에 자리한 다람살라를 방문했다. 다람살라에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중국의 탄압으로부터 망명해 있다. 티베트 불교를 세계에 알린 상징적인 곳이다. 오체투지로 히말라야를 넘어온 승려는 물론 불자들, ‘참나’를 찾기 위해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로 붐빈다. 명상과 구도, 영성을 의미하는 특별한 공간이기도 하다. ‘깨달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곳에 가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평화가 찾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다람살라는 그 다람살라가 아니었다. 달라이 라마가 직접 법회를 여는 시기가 이곳에선 최대 성수기다. 비탈진 길을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려대며 택시가 오고간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숙소를 잡기도 쉽지 않다. 달라이 라마가 법회를 여는 남걀사원 앞의 삼거리에는 택시 정류장이 있고, 길에는 2~4층 높이의 호텔과 상점이 들어서 있다. 와이파이 없이 못 사는 현대인들을 위해 PC방과 인터넷 카페가 성업 중이다. 붉은 가사를 입은 티베트 승려가 스마트폰을 들고 통화하는 풍경과도 만난다. 그곳에서 만난 식당 주인은 “개발붐이 일어 2~3년 내 하얏트호텔 등 5성급 호텔 두 곳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람살라에 조용한 수행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걀사원 앞에서 택시를 타고 30분가량 산쪽으로 이동하자 티베트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 나왔다. 흙으로 담을 쌓고 양철로 하늘을 가린 방 한 칸짜리 움막이었다. 오후불식(정오 이후 식사를 하지 않는 것)하며 일생을 정진하는 수행자들을 만났다. 작은 탁상과 냄비, 세면도구와 경전이 가진 것의 전부인 삶이 경건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곳도 무심한 이방인의 눈엔 관광지 중 하나가 아닌가.

다람살라에 다녀온 후 그곳을 방문한 적 있는 사람들이 다람살라의 안부를 물어왔다. 달라이 라마를 만났을 당시 영적인 감흥이나 다람살라에 대한 느낌을 궁금해했다. 그럴 때마다 경적이며, PC방 운운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이 자꾸 떠오른다. 법회에서 달라이 라마는 경전을 설하기보다는 “미래의 희망은 아이들 교육에 있다”고 말했다. 황망히 망명온 달라이 라마가 가장 먼저 세운 곳도 사원이 아닌 학교였다. 증오와 좌절을 넘어 미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것이리라. 남걀사원을 오가며 자주 만난 풍경 중 하나는 서너 살 된 어린 자식을 옆에 두고 자갈을 나르는 공사장의 가난한 여인들이었다. 하루의 고단한 삶을 정리하며 사원에 들러 마니차(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불교 경전을 넣은 경통)를 돌리는 ‘착한 손’들도 있었다. 쉴 새 없이 울린 경적도 사람들과 길에 누워 있는 소와 개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다. 다람살라에는 땀과 눈물, 희망이 있었다.

왜 머릿속으로 신선이 사는 그림 같은 다람살라만을 떠올렸을까. 나를 성찰하고 수행과 깨달음을 구하는 곳이 세상 밖에 있다고 생각한 어리석음 때문이다. 화엄경에도 ‘세간을 떠나서 보리(깨달음)를 찾는다면 그것은 마치 토끼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진정한 나를 찾고 깨달음을 얻는 장소는 세상을 떠난 곳이 아닐 게다. 복작대고 아프고 서럽고 더럽고 불의하더라도 어깨동무하고 함께 나아가는,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이 아닐까. 당신의 다람살라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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