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쉘이 아이유처럼 성공하길

2020.06.12 03:00 입력 2020.06.12 03:04 수정

우연이었을까. 전날 음악영상을 본 때문인지 유튜브를 보는데 9년 전 방송한 SBS <K팝스타 시즌1> 영상이 떴다. 당시 드문드문 봤던 터라 참가자들을 잘 몰랐었다. 그런데 자신을 소개하며 심사위원들에게 “놀라셨죠?” 하며 웃는 참가자가 눈에 들어왔다. 경기 파주시에 사는 당시 21세 혼혈 청년 이미쉘이었다. 노래를 아주 잘했다. 1차 심사에선 호평과 혹평이 엇갈렸고 궁금증이 커져 다른 영상도 찾아봤다. 방송 중간중간 나온 짤막한 인터뷰로 그간의 삶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오디션 동안 ‘왜 노래 절정의 순간에 감정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긴장감과 속상한 마음에 울음이 터질 법도 한데 그저 담담히 대답했다.

김희연 소통에디터

김희연 소통에디터

“아픔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요 … 감정표현을 충분히 하면서 살아온 때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조금만 감정을 깨면 될 텐데 감정이 한번 깨지면 와장창 깨질 것 같아서….”

이미쉘은 최종 생방송 Top10에 진출했다. 이하이, 박지민 등 쟁쟁한 참가자들과 경합하며 분투하다 우승 고지를 밟지는 못했다. 생방송 무대에서 최종 탈락한 그에게 심사위원 박진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심사평을 했다. “왜 이렇게 감정이 안 나오냐? (이미쉘에게) 물었어요. 지금까지 크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많은 상처를 줬다는 거였어요. 정말 자녀를 둔 모든 부모님들은 어린아이들이 피부색이나 인종이 다르다고 해서 놀리지 않도록 많은 가르침과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태연하게 잘 이겨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이미쉘양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박진영이 말한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9년이 지나 때늦게 이미쉘 영상을 역주행한 날은 마침 지난 6일이었다. 이날은 서울 명동에서 항공거리로 약 1만33㎞나 떨어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침묵 행진이 열렸다. 시민 150여명이 참여했다. 그들은 “We stand in Solidarity because Black Lives Matter.(우리는 연대한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세계 곳곳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항의시위가 거대한 연대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한국도 이에 동참했다. 이날 명동의 침묵시위에 참가한 한 외국인 여성은 흑인들의 목소리가 중요한데 참여가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

그들은 정말 어디에 있을까. 5000만명이 넘는 대한민국 인구수 중 비율을 알 수는 없지만 혼혈인 한현민 등 대중이 쉽게 TV에서 볼 수 있는 가수와 모델, 배우 등은 고작 4~5명에 불과하다. 이미쉘의 그 후 활동이 궁금해져 더 찾아보다 2014년 내놓은 첫 디지털 싱글곡 ‘Without you’의 뮤직비디오를 봤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여자아이는 어린 미쉘처럼 보였다. 밖에서 공포에 휩싸여 집으로 도망친 아이는 잠금장치를 부술 듯한 누군가의 두드림에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허름한 집 안 벽에 색색의 크레파스를 들고 그림을 그리려 하지만 벽에는 이미 ‘초콜릿, 씻어 깜시, 꺼져, 괴물…’ 등 온갖 비수 같은 말들이 낙서돼 있다. 거울을 보며 얼굴에 하얀 분가루를 묻히던 아이는 웃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1년 전으로 표시된 또 다른 영상에서 미쉘은 가슴 아팠던 유년의 한 자락을 처음으로 꺼냈다. 친구와 놀고 있는데 친구 어머님들이 ‘만지면 더러워져’ 하며 못 놀게 한 일들, 두 명의 친구로부터 맞은 이야기, 마음의 상처로 여덟 살부터 열다섯 살 겨울까지 8년간 외출을 하지 않은 이야기 등. 언젠가 가수 인순이가 털어놓았던 이야기들이 그대로 반복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무려 34년이다.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참 더디게 변하는 것들이 있다. 변하는 것에도 차별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미국 저편에서 반복되고 있는 ‘조지 플로이드(들)의 죽음’에 세계 시민으로서 분노하고 연대한다. 그러나 분노를 면죄부로 삼지는 말자. 2018년 기준 다문화 가구원 수가 100만명이 넘는 우리 사회에서, 동네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다름에 따른 차별은 무수할 테니까. 변화하고 불합리한 제도와 법도 찾아 고치자.

“피부색이나 나이 같은 것이 노래하는 데 걸림돌이 절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난생처음 팬클럽 가입을 알아봐야겠다. ‘퀸즈(Queenz)’ 자작랩도 신난다. 이미쉘 노래 잘하니까, 그것으로 충분한 그를 응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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