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을 지배하는 미국화 경향

2016.09.30 20:35 입력 2016.09.30 20:37 수정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칼럼]대중음악을 지배하는 미국화 경향

오는 4~8일 내한 무대를 갖는 팝가수 크리스 노먼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 국내 팝팬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영국의 록 밴드 ‘스모키’의 원조 보컬이었다. 우리가 애청한 ‘리빙 넥스트 도어 투 앨리스’ ‘멕시칸 걸’ ‘왓 캔 아이 두’ 등 스모키의 레퍼토리는 모조리 그가 노래했다. 그룹 스모키가 내한공연을 갖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2년부터 세 번이나 방한해 올드 팬들과 만났지만 그때는 아쉽게도 스모키와 동격인 크리스 노먼이 빠져 있었다.

스모키의 음악은 한국인들과 각별한 관계에 있다. 그들 노래가 영국에서 사랑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인기의 체급이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국내 팬들의 스모키 노래에 대한 대접은 절대적으로 융숭했다. 당대 음악의 유행을 좌지우지한 음악다방의 디스크자키들은 다투어 스모키 노래를 틀어댔고 홍서범은 ‘리빙 넥스트 도어 투 앨리스’를 번안한 ‘그대 떠난 이 밤에’로 솔로 데뷔를 했다.

그 무렵은 서구에 대한 동경과 선망의 정서가 작동하던 시절이라 팝송이 가요보다 상대적 우위를 점했다. 라디오에는 팝송 전문프로가 범람했고 팬이라면 빌보드 차트 상위권 노래는 줄줄이 대야 했다. 그럼에도 정반대 의식도 뚜렷이 존재했다. 무조건 본고장 인기를 추구할 게 아니라 우리의 정서와 어울리는, ‘한국적인 팝송’을 골라내자는 것이었다. 스모키는 그러한 흐름의 산물이었다. 길거리 스피커와 전파를 독점하다시피 한 그들의 노래 ‘왓 캔 아이 두’는 미국은 물론 영국 차트에도 명함을 내밀지 못한 곡이었다.

외국인들은 제목도 모르는 팝송을 우리만이 즐기는 사례들이 부지기수였다. 고 최헌이 번안해 부른 버티 히긴스의 ‘카사블랑카’가 그랬고, 팝송 디제이는 록웰(Rockwell)의 본고장 히트곡을 놔두고 처연한 발라드 ‘나이프’를 더 선곡했다. ‘아무리 서구 팝송에 빠져 있더라도, 그래도 우리네 사람들의 감성에 부합하는 노래를 골라야지…’라는 조금은 민족주의적인 수용 태도가 개입했다고 할까.

창작가요를 만드는 가수들도 이 점은 마찬가지였다. 트로트를 벗어나 서구식 팝과 록을 토대로 한 음악을 써내도 어떻게든 한국적 정서와 고유의 소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땀을 흘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송창식의 ‘가나다라’, 김정호의 ‘나그네’, 정태춘의 ‘애고 도솔천아’, 조용필의 ‘자존심’, 김수철의 ‘별리’,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같은 곡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세기의 명곡이 된 신중현의 ‘미인’ 역시 그러한 한국적 정체성 구현에 따른 결과였다. 시작을 알리는 그 유명한 기타 리프부터 마치 가야금 아니면 거문고를 뜯는 듯했다. 서양 악기라 할지라도 소리와 감성의 국산화를 이룩하려는 자세 때문에 그는 ‘한국 록의 대부’라는 역사적 칭호를 획득했다.

송창식은 “한국인으로서 한국 고유의, 전통의 음을 찾는 것은 의당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했고, 김창완이 산울림 음악을 만들었을 당시 저변에 깔린 사고는 ‘팝송을 넘어서는 가요’를 써내는 것이었다. ‘탈춤’ ‘어부사시가’ ‘하늘나라 우리 님’ 등 제목부터 전통성이 배인 활주로와 송골매의 노래들에 대해 배철수는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에 있던 민족적 이미지가 외부로 표출된 것으로 본다”고 밝힌 바 있다.

근래 힙합과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이 유행의 축을 이루면서 전통성에 기저한 것을 찾아 땀을 흘리는 경향은 상당히 퇴색했다. 가공과 재가공의 개념이 아닌 외국의 최신 스타일을 직수입해 복제하고 재현하는 수준에 그치는 음악들이 넘쳐나고 있다. ‘미국화’와 ‘영국화’가 트렌드를 주도하면서 한국적이라는 말은 적잖이 비웃음을 당한다. 글로벌 무대로 뻗어가야 하고 세계화, 실은 미국화라는 용광로가 거대해서일까. 우리의 감수성을 중시하는 음악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대세 이동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 음악이 최소한의 지분이라도 확보해 다양성의 두께를 늘렸으면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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