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 무상급식 합류한 대구

2016.10.20 20:29 입력 2016.10.20 20:35 수정

2010년 5월13일자 경향신문 4면 한쪽에는 커다란 표가 실렸다. 교육감 예비후보 명단이었다. 주요 공약이 소개되고 마지막 칸에는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 의견이 표시됐다. 기자들이 후보자들에게 일일이 물어서 만든 표였다. 찬성의견이 압도적이었지만 반대의견도 적지 않았다. 반대의견을 분명히 한 후보 중 한명은 당시 대구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우동기 전 영남대 총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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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6월3일 치러진 첫 교육감 직선제 선거는 두가지 의미 있는 성과와 과제를 남겼다. 첫번째는 호칭의 문제였다. 정당인은 교육감 선거 출마자격이 없는 데다 후보들마다 군소 교육단체들이 단일후보로 지지했다고 홍보하는 상황이어서 성향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호칭이 진보·중도·보수 후보였다.

경향신문은 전국의 진보진영 후보들을 상대로 문의했다. 진보라는 어감이 부담스럽다는 의견과 ‘야권단일후보’ ‘범민주시민후보’ 등의 호칭을 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진보후보라는 호칭을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다른 후보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진보후보라는 호칭이 만들어졌고, 선거 후에는 진보교육감이라는 단어가 정착됐다. 진보교육감은 이제 익숙한 용어가 됐다.

두번째는 무상급식으로 촉발된 ‘보편적 복지’ 논쟁이었다. 무상급식은 지방선거의 쟁점이었고 찬·반 논쟁에 대통령까지 가세할 정도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삼성그룹 회장 같은 분 손자·손녀야 무상급식 안 해도 되지 않겠느냐. 무상으로 가면 감당 못한다”며 선별적 무상급식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해 온 시민단체와 야권은 “일부만 무상급식을 하면 아이들에게 ‘눈칫밥’을 먹게 하는 문제만 야기한다”면서 “이건희 회장의 손자가 무상교육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듯이 무상급식은 모두에게 당연하게 무상배분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선거 직후 서울에서는 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와 곽노현 진보교육감이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하면서 재선에 성공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격돌했다. 급기야 오 시장은 시장직을 내건 배수진까지 치고 주민투표를 제안했지만 투표율 미달로 2011년 8월26일 시장직을 사퇴했다.

무상급식 논쟁은 이후 진보진영에서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됐다. 사회적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의 한계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를 바탕으로 한 복지국가는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와 이를 위한 증세 문제 등에 대한 국민적 설득과 합의가 좌절되면서 ‘어떠한 복지국가를 어떻게 만들지’는 아직도 숙제로 남아 있다.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난 17일 대구시교육청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진행됐다. 재선에 성공한 우동기 대구시교육감과 새누리당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이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하기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것이다. 두 사람의 용기 있는 정책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 보수적 색채가 강한 대구도 가세하면서 전면 무상급식은 지루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정책이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최근까지도 방송인터뷰에서 “(시장)직을 건 것에 대해서는 반성을 많이 했지만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후회가 없다”고 얘기하는 오세훈 전 시장을 비롯해 마치 나라가 망할 것처럼 반대했던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진보진영은 이제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비록 어려운 과제지만 무상급식을 믿고 지지해주고 표를 던져준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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