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적 통일관’과 한·일 군사협정

2016.11.06 20:58 입력 2016.11.06 21:03 수정
정욱식 | 평화네트워크 대표

‘아버지 콤플렉스’ 탓이었을까? 박근혜는 임기 초반에 대일 강경 기조로 일관했었다. 진보 진영에서도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2014년부터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해 연말에는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을 체결했다. 미사일방어체제(MD)를 고리로 하는 3자 동맹의 문을 연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5년 12월에는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에는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엔 ‘소금’을 뿌렸다. 그런데 이 역시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가는 길 위에 있는 걸림돌을 치우기 위한 것이었다.

[세상읽기]‘주술적 통일관’과 한·일 군사협정

그리고 올해 말에 또 사고를 치려고 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바로 그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 대변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외교·안보 사안을 챙겨가겠다”고 말했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그 첫 조치가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협의하기 위해 국방부 실무단을 일본에 파견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민구 국방장관은 “우리의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논의를 재개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되는 만큼 안보 실용주의 차원에서 일본과의 군사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는 걸까?

정보보호협정은 한·미·일 3자 MD 구축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3자 MD는 한국 방어에 실효성이 없다. 2013년 6월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발간한 보고서에도 “기술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북한과 너무 가까워 미사일이 저고도로 수분 내에 날아와 3국 MD 공조에서 이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나와 있다.

당연한 말이다. 우리는 종심이 짧은 ‘지리적 운명’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지정학적 신세’에 처해 있다. 그래서 사드든, 3자 MD든, 심지어 ‘온 우주가 도와줘도’ 우리에게 ‘신의 방패’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북핵은 요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못 쏘게 억제하고, 관계개선으로 관리하며 협상으로 줄여나가면서 궁극적으로 폐기해야 할 대상이다. 적어도 우리에겐 이렇다.

하지만 이런 상식적인 얘기조차 이명박근혜 정부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왜 그랬을까? 두 정부를 관통하는 게 바로 ‘흡수통일’이었기 때문이다. 갈피를 못 잡던 이명박의 대북정책은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질환으로 쓰러지면서 흡수통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곤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미국은 통일을 위해서는 일본의 군사 협조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밀실 협상이 들통나자 약삭빠른 이명박은 독도를 방문해 친일 혐의를 무마하려고 했다.

박근혜는 어떤가? 그가 자백한 최순실의 ‘도움’은 통일·외교·안보 분야에도 깊숙이 뻗쳐 있었다는 사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최순실은 “2년 내에 통일이 된다”는 말을 측근들에게도 하고 다녔다고 한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첨삭 지도하고 청와대를 제집 드나들 듯했던 최순실의 ‘주술적 통일관’이 박근혜의 혼을 지배해온 것은 아닐까? 북한을 때려잡고 통일을 할 수 있다면, ‘흑묘’든, ‘백묘’든 관계없다고 여기면서 일본과도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요즘 보수 진영에선 ‘내치는 책임총리가, 외치는 대통령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다. 하지만 정통성을 상실한 박근혜에게 국가의 대표성을 맡겨두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또 위험천만한 일이다. 유일한 길은 질서 있는 박근혜의 하야이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건설에 있다. 이래야만 새롭게 들어설 미국 정부, 1인 지배력을 강화하는 중국의 시진핑, 장기 집권에 들어서고 있는 일본의 아베 신조 그리고 자신감이 커지고 있는 김정은을 상대할 수 있는 정치 리더십을 창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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