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박근혜는 홀로 설 수 있을까

2016.10.28 20:33 입력 2016.10.28 20:35 수정
백병규 시사평론가

[세상읽기]대통령 박근혜는 홀로 설 수 있을까

언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궁금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언행이나 그가 내놓은 정책들이 온전히 그의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터이다. 대선 때 TV토론에서 그 생각의 깊이와 논리의 정도는 이미 밑천을 드러낸 바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그가 내놓은 한마디는 그 정점을 찍는다.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그의 감춰진 ‘7시간’의 행적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킨 이 한마디는 그의 상식과 상황판단의 수준마저 의심케 했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참모들과 각료들의 제안과 조언에 귀 기울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에게 참모나 각료는 지시의 대상이지 협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부하와 협의하는 절대 권력자란 그에게 있을 수 없었다. 예측 불허의 인사 행태 또한 마찬가지. 그래서 박 대통령에게 정국 운영의 큰 그림을 그려주고, 정책의 주된 가닥을 잡아주는 그의 배후, 혹은 그의 주변이 누구일까 궁금증을 자아냈다.

처음에는 원로자문그룹인 ‘7인회’가 주목됐다. 그 일원이던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등용으로 7인회가 실세라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지만 잠시였다. 다음에 나온 것이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 그 중심인물로 정윤회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지금 와서 보면 그 실상에 비교적 가까이 접근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 막후 실세는 따로 있었다. 최순실. 박 대통령이 “어려웠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 그의 부친인 최태민과의 깊은 인연을 대를 이어 맺어온 특수관계였음이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제 대통령 박근혜는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의 모든 것이 그의 것인지 의심스럽게 됐다. 누가 대통령이었던 것인지를 의심하게 된 오늘의 상황이 비상한 까닭이다. 그의 연설문 정도가 문제가 아니다. ‘통일대박’을 주술처럼 외쳤던 것이나, 개성공단을 폐쇄한 것이나,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이나 그것이 누구의 결정인지를 이제는 확정할 수 없게 됐다. 국가의 명운과 한반도의 평화를 좌우할 수 있는 정책들의 최종 결정권자를 알 수 없게 된 이 황망한 사태는 국정농단 수준을 넘어선다. 국가의 체계와 근본이 무너졌음을, 민주주의 헌정 질서의 근간이 붕괴된 실상을 확인시켜 주는 허탈한 결말이다. 게다가 자기 딸의 대학 입학과 학점 취득을 위해 권력의 영향력을 과시해 온갖 편법을 동원한, 이기적이어도 너무나 이기적인 인물이 대통령의 분신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하니 이를 어쩔 것인가.

주권자인 국민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이제 와 박 대통령만 탓하고, 그의 책임만을 묻는 것은 허망하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도 그랬던 사람이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바뀐 적이 없다. 다수의 주권자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을 먼저 탓할 일이다. 대통령의 일탈을 방조하고 아무런 견제도 하지 못한 청와대의 참모들이나 각료, 집권당의 책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국정의 파탄을 방조하고 권력의 사유화에 일조한 그들이 이제 와서 국정의 공백 운운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태는 파렴치한 정도를 넘어선다. 박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의 행태를 개탄해 마지않는 다수의 언론들 또한 권력의 독선과 일탈을 방치하고, 이념적 편가름 속에서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기까지 했던 자신들의 전력부터 되돌아볼 일이다. 박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은 기득권 세력의 이런 풍토 속에서 가능했던 존재이기도 하다.

앞으로가 문제다. 최순실과 분리된 대통령 박근혜는 과연 어떤 대통령일 수 있을까? 이른바 ‘문고리 3인방’도 떠나보내고 든든한 수문장 역할을 하던 우병우 수석도 떠난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야권과 여권 일부에서는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수습책으로 내놓고 있지만 지금의 정치 풍토에서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설령 정치권이 어렵사리 수습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고집불통의 박 대통령이 이를 받을지도 의문이다. 특검이 됐든, 검찰 수사가 됐든 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또한 제대로 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쟁은 격화하고 정국은 더욱 혼돈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더욱더 고립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블랙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박정희 시대는 분명하게 막을 내릴 듯싶다. 박 대통령이 그토록 소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겠지만 그 역시 자신이 자초한 일이다. 박 대통령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나마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선택으로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다면 대통령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그보다 다행스러운 일은 없다. 어찌할지 지켜보자. 그 또한 운명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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