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시킬 또 다른 권력

2016.11.10 21:10 입력 2016.11.10 21:17 수정

“우리 학교 다닐 때 ‘삥’ 뜯겨봤잖아요. 노는 선배들이 교실까지 찾아와서 주머니 뒤지는데 어쩌겠어요. 이것도 그거랑 똑같아요.” 미르재단에 출연했던 한 대기업 임원과의 통화에서 ‘삥 뜯기’란 단어가 귓전을 때렸다. 자발적으로 낸 돈이 아니니 억울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비선 실세’ 최순실 등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의 국정농단 파문에 휩싸인 기업들은 ‘나도 피해자’임을 강조한다. 검찰 수사가 옥죄어 오면서 “돈 뜯긴 것도 억울한데 뺨까지 맞게 생겼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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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익숙한 풍경도 펼쳐질 것이다. “기업 활동 위축은 경제를 더 얼어붙게 만들 것”이란 발언이 등장할 것이다. 실제 생산과 투자, 소비, 수출이 죽을 쓰고 있고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른 불확실성도 커진 내우외환의 상황이다. 존재감 없이 뒷북에 헛발질을 일삼던 경제정책 기능도 지금은 공백상태다. 정계, 재계뿐 아니라 학계와 언론계에 포진해 있는 재벌의 우군들이 우려를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기업하는 사람들이 잘 안다. 재벌은 정권과 ‘거래’를 한 것이다. ‘보험’을 들었다 해도 또한 명백한 거래다. 그것도 비용 대비 효과가 아주 큰 ‘딜’이었다. 수십조원의 자산을 가진 재벌들에 몇십억, 몇백억원은 조족지혈일 수 있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와 사업구조 개편, 롯데는 신동빈·신동주의 ‘형제의 난’과 검찰 수사, CJ는 이재현 회장의 사면에 목을 매던 시기였다. 부영은 세무조사를 부담스러워했다. 최순실과 안종범은 그 약점을 파고들었을 뿐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그동안 역사의 창고 속에 처박아 두었던 ‘정경유착’을 다시 무대에 등장시켰다. 정경유착은 사회적 자원을 권력과 재벌이 나눠먹던 개발독재 시대의 유산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하는 정치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시민과, 시민의 요구를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정치 과정 역시 배제된다. 그렇기에 경제에 대한 정치의 관여를 봉쇄하자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시민의 정치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게 우선이다.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 한정된 예산의 투입 순위와 규모를 정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핵심이다. 이 과정에 정치의 기능이 사라진다면 권력의 사유화는 더 노골화할 것이다.

지금 재벌은 과거 개발독재 시절보다 더 강해졌다. 정부의 자금을 얻어 성장한 재벌에게 그 어느 때보다 경제력이 집중된 상태다. 민주화 이후에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방패 삼아 세계 무한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논리는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됐다.

“재벌의 이익 실현에 필요하다면 국가는 법을 바꾸거나 법의 침묵을 마다하지 않는다. 국가 재벌 연합이 주도하는 시장 구조는 재벌·중소기업간 계층간 불균등 성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다.”(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양극화는 우리 사회를 점점 무겁고 깊게 짓누르고 있다. ‘가족 소유 총수 중심’이라는 재벌의 특성은 사회 곳곳으로 퍼진 지 오래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역시 가족회사를 통해 재산을 관리했다. 이렇게 관리되고 불려진 기득권층의 부(富)는 자식들에게 대물림될 것이다. ‘1 대 99’의 사회, 부모의 소득과 지위에 따른 금수저·흙수저의 ‘헬조선’은 새로운 신분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마음 놓고 말을 타도록 삼성이 건넨 돈의 100분의 1만 있었어도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같은 비극은 대통령의 퇴진이나 탄핵만으로 막을 수 없다. 청년실업과 영세 자영업자의 증가, 비정규직 확산과 하청기업 노동자의 저임금, 기업 간 갑을관계의 근저에는 구시대의 유물인 재벌 중심 경제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좌절은 깊어지고 있다. 재벌체제 역시 역사의 무대에서 퇴진시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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