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

2016.12.27 21:08 입력 2016.12.27 21:10 수정
전중환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전중환의 진화의 창]그래도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

우울한 세밑이다. 몇 달째 이어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국민이 깊은 분노와 좌절감에 빠져 있다. 월급봉투는 그대로인데 물가와 대출금리는 가파르게 오른다. 나라 밖 세상도 어둡긴 마찬가지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슬람 무장단체 IS의 테러, 시리아 내전과 난민 사태 등으로 혼란과 불확실성이 전 세계를 덮치고 있다.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걸까? 역사는 그저 뒷걸음질만 치고 있는가?

[전중환의 진화의 창]그래도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

얼마 전 재계 총수들을 불러 모은 국정농단 조사 청문회는 이처럼 비관적인 전망에 힘을 보탠다. 전두환 정권의 ‘일해재단’에 돈을 상납한 재벌 회장들이 출석한 5공 비리 청문회가 28년 만에 그대로 되풀이된 셈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이 나라는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끊지 못했다. 도대체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그렇다. 희망은 있다. 입에 발린 위로가 아니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뉴스만 보면 세상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정의상, 뉴스는 이미 일어난 일만 보도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은 보도하지 않는다. 국정을 농단하지 않은 보통 아줌마는 뉴스에 절대 등장하지 않는다. 부패나 폭력사건의 발생빈도가 완전히 0이 되지 않는 이상, 이런 사건들은 일단 일어나기만 하면 머리기사로 대서특필된다. 과거에는 그런 범죄가 얼마나 흔했는지 통계적인 추세를 꼼꼼히 따져보는 기사는 드물다.

그렇다면 통계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경제학자 맥스 로저는 ‘데이터로 본 세계(Our World in Data)’라는 블로그에서 역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정리했다. 첫째,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대다수 사람은 하루 일해 하루 먹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이전의 전 세계 평균 소득은 고작 200달러도 되지 않았다. 평균 소득은 이후 무섭게 증가했다. 하루에 1.25달러 미만을 버는 사람으로 정의되는 극빈층의 비율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총인구의 절반 이상에서 20% 미만으로 줄었다.

역사적으로 소득 불평등도 함께 심화하였기에 전체적인 부의 증가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로저는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결코 전 지구적인 경향이 아님을 발견했다. 소득 불평등은 여전히 큰 문제이긴 하지만, 지난 십여 년 동안 전 세계의 소득 불평등은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둘째,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쟁, 살인, 테러, 강간, 고문, 동물 학대, 자녀 체벌, 성차별, 동성애자 차별 등 모든 형태의 폭력이 감소했음을 방대한 통계 수치로 입증했다.

원서가 출간된 2010년 이후에도 폭력은 계속 감소 중이라는 분석 결과도 핑커는 최근에 제시했다. 예를 들어, 미국 내에서 벌어진 살인, 배우자 구타, 강간, 아동 학대 사건은 2010년 이후에도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는 계속 증가하는 반면에 중국과 러시아 같은 일당 독재 국가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둘 만하다.

그래도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세계가 점점 더 부유하고, 더 평화롭고, 더 오래 사는 방향으로 전진해 왔다고 해도 한반도는 유독 예외일 수도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도 이런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다고 본다. 이명박근혜가 역사를 일정 부분 퇴보시켰긴 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은 크게 보면 계속 나아져 왔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남산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빨갱이로 몰리는 일이 흔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구타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수십 년 전에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피눈물을 흘려 독재자를 끌어내렸다. 오늘날에는 누적 1000만명에 달하는 촛불들이 평화적으로 꼭두각시를 끌어내렸다.

필자는 대검찰청의 살인범죄 통계를 활용해 살인사건 발생률 추이를 살펴보았다. 2005년에는 인구 10만명당 1.05명이 살해당했다. 이 수치는 계속 낮아져서 2014년에는 0.71명으로 줄었다.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잃을 확률은 겨우 십 년 전과 비교해도 눈에 띄게 낮아진 것이다!

한겨울에 촛불집회를 굳이 안 나가도 세상은 알아서 나아진다는 무책임한 낙관론을 퍼뜨리려 함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낙관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북한 핵위협, 저출산, 경제 침체, 세대 갈등, 빈부 격차, 기후 변화, 이념 갈등, 국정농단 등을 풀기 위해서는 각각의 문제에 맞는 과학적인 원인 분석과 정책 수립에 힘을 모아야 한다. 물론 성공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정말로 대한민국은 ‘지옥불반도’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멍하니 주저앉아 이게 다 박근혜와 그를 찍은 51% 탓이라며 푸념만 늘어놓을 수는 없다. 세상은 점점 더 부유하고, 평화롭고, 이성, 인권, 과학, 자유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새해에는 모든 게 더 좋아질 것이다.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