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수지 딜레마

2017.11.06 11:08 입력 2017.11.06 21:16 수정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황대권의 흙과 문명]아웅산 수지 딜레마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민주화의 화신인 줄 알았는데 정작 권력의 자리에 앉더니만 한낱 독재자에 지나지 않았다며 속았다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소수민족이 공존하는 미얀마의 특수성으로 볼 때 어쩔 수 없다며 소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주로 서구의 인권운동가들이고, 후자는 주로 미얀마의 민족주의 운동가들이다. 아웅산 수지가 권력을 잡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서구사회, 특히 인권문제에 민감한 북유럽 지역에서 간디와 넬슨 만델라급의 ‘성인’ 반열에 있었다. 간디는 권력을 잡지 못하고 죽어 성인이 되었고, 넬슨 만델라는 권력을 잡고 어느 정도 인종차별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성인이 되었다. 그에 반해 수지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그렇고 그런 제3세계 독재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황대권의 흙과 문명]아웅산 수지 딜레마

아웅산 수지 딜레마란 미얀마 서쪽 국경지대에 사는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학살 및 탄압을 그녀가 방관 또는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은 식민지를 겪은 제3세계 나라에서 결코 낯선 일이 아니다. 식민지 시절 당시 버마(1989년 미얀마로 개명)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이 서쪽 국경지대를 경영하기 위해 동파키스탄 지역과 버마 국경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는 로힝야족을 데려다 부려먹은 것이 씨앗이 되었다.

우리도 일본 제국주의 시절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징집되어 갔다가 ‘동경대지진’ 때 일본인들로부터 대규모 학살을 당한 바 있다. 부려먹을 때는 언제고 국내 상황이 어려워지자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희생양 삼아 민심을 달래는 일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독재자들이 잘 쓰는 수법이다. 서구의 인권운동가들은 아무리 수지가 군부와 동거 중이라도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사람인데 보편적 인권에 대해 한마디쯤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인권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재단하기에는 그 배경이 너무 복잡하다.

미얀마 당국에 의하면 로힝야족은 미얀마 국민이 되기를 거부하는 불법거주 외국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남의 땅에 불법 거주하는 주민 쫓아내기’의 국제판이랄 수 있다. 추방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폭력과 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미얀마 군부 독재자들이 오래전부터 로힝야족의 시민권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종교적 갈등도 있지만 식민지 시절 지배자였던 영국의 ‘분할-지배(devide and rule)’ 통치가 더 큰 요인을 제공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로힝야족을 데리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싸운 반면 버마 민중은 일본과 힘을 합해 영국 제국주의자들과 싸웠던 것이다. 말하자면 구악을 몰아내기 위해 신악과 손을 잡은 것이다.

이때 버마 민중을 이끌고 영국을 몰아낸 영웅이 바로 수지 여사의 아버지인 아웅산이다. 종교도 다르고 전쟁 때 적으로 싸웠으니 아웅산 장군의 직계 후배들이 로힝야족을 곱게 볼 리가 없다. 더군다나 근래에 들어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이 세력을 확대하자 사실상 불교국가인 미얀마의 군부가 로힝야 반군의 공격을 빌미로 삼아 대규모 인종청소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로힝야족만이 아니라 전 세계 소수민족이 겪고 있는 공통의 문제이다. 힘 없는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은 어쩔 수 없이 해당 국가의 헤게모니를 인정하고 그 나라의 국민으로 편입되었지만 고집 센 몇몇 소수민족들은 여전히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달라이 라마가 이끌고 있는 티베트민족이다. 유럽에는 스페인의 바스크지역 분리주의가 유명하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도서지역에도 한 나라의 국민 되기를 거부하는 소수민족들이 많이 있다.

북아메리카의 인디언과 하와이 원주민, 일본의 아이누족과 오키나와 원주민, 러시아의 에스키모인 등도 같은 과정을 거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소수민족을 말살 내지 동화시키려는 배경에는 근대 유럽이 창안하여 전 세계에 퍼트린 ‘민족국가(nation-state)’가 자리하고 있다. 민족국가가 유행하기 전까지 세계의 소수민족들은 자기네 땅에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문화전통 아래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문화와 전통이 부정되고 “이제부터 너희는 ○○국가의 국민이니 내일부터 국가에 세금도 내고 우리가 제공하는 학교 교육을 받고 군대도 가야 한다”고 통지를 받는다. 이를 거부하면 감옥에 가거나 죽임을 당하였다. ‘국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은 소수민족들의 삶이 이전과 비교하여 행복했다면 지금과 같은 민족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은 정체성의 혼돈 속에서 이등국민처럼 차별을 받고 있다. 세계가 민족국가로 나뉘어 치열한 경쟁을 계속하는 한 소수민족의 비극과 약소 민족의 굴욕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아웅산 수지 여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한 소수민족에게 시민권을 주느냐 마느냐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부터 종교의 공존, 식민지 트라우마, 제국주의의 분할-지배, 허구에 지나지 않는 민족지상주의, 문명의 강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요소들이 뒤범벅되어 있다. 과연 수지 여사가 민족국가를 넘어서는 사고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녀가 살생을 금지하는 진정한 불교도이고 135개나 되는 다민족국가의 명실상부한 지도자라면 그에 상응하는 결단을 내릴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녀는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은 권력중독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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