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리의 ‘참’

2017.12.18 20:32 입력 2017.12.18 20:33 수정
김성호 | 서남대 의대 교수

수리 종류 가운데 진짜 수리, 참수리.

수리 종류 가운데 진짜 수리, 참수리.

우리말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스스로 한자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말에 한자나 한자에서 비롯한 낱말이 많으니 우리말을 제대로 알려면 한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더군다나 이과 학생이었습니다. 대학입시를 생각한다면 성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헛짓을 한 것이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김성호의 자연에 길을 묻다]참수리의 ‘참’

우리말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낱말 하나를 꼽아 보라면 나는 ‘참’을 고르겠습니다. ‘참’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은 그 자체로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홀로 서지는 못합니다.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꾸며줍니다. 그리고 ‘참’이라는 낱말이 어떤 낱말 앞에 오면 다음에 오는 낱말은 하나같이 더 좋은 뜻을 품게 됩니다. 참사랑, 참마음, 참사람, 참말, 참뜻… ‘참’이라는 말은 거짓의 반대말로 진짜라는 뜻과 더불어 으뜸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체에도 ‘참’이라는 낱말이 붙어 있는 생물종이 과(科)마다 하나씩은 있습니다. 수많은 나무 가운데 참나무가 있습니다. 도토리를 맺는 졸참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등을 합하여 참나무라고 합니다. 서양에서도 도토리가 맺히는 모든 나무는 참나무과 참나무속으로 분류하는데 참나무속을 나타내는 속명(屬名) Quercus는 ‘진짜’를 뜻합니다. 참나무로 만든 숯 또한 숯 중의 으뜸인 참숯입니다. 깨 가운데 최고는 참깨며, 참깨에서 짜낸 기름 역시 참기름이라고 합니다. 나물 중에도 으뜸으로 치는 나물에는 참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참돔, 참다랑어, 참복, 참조기, 참매미, 참게, 참버섯….

그런데 주위에서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많아서 무척이나 친근한 생명체에도 참이라는 낱말이 붙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새가 그렇습니다. 참새가 새 중의 으뜸은 아닐 것입니다. 주위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어서 우리와 가장 친한 새입니다. 참꽃은 진달래의 다른 이름입니다. 참꽃 또한 꽃 중의 진짜 꽃이나 꽃 중의 으뜸을 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봄은 왔다 하지만 아직 따듯함보다 차가움이 더 강하여 다른 꽃들이 잠들어 있을 때 그 차가움 이겨내고 우리나라 어디서나 소박한 꽃을 피워내는 친근한 꽃이기에 그리 불렸을 것입니다. 참개구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차가운 북서풍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손이 시림을 지나 아픕니다. 새의 세계에서 겨울은 겨울철새의 계절이며, 겨울철새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새는 맹금류입니다. 매서운 겨울날의 칼바람을 몸으로 다스리는 친구이기에 그러합니다. 맹금류 하면 수리 종류가 떠오르는데, 수리 종류 중에도 참수리가 있습니다.

참수리는 흔한 새가 아닙니다. 국제적인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종으로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에서 정한 적색 목록에 올라있는 위기종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 제243-3호,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정하여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참수리의 참은 진짜 또는 으뜸을 뜻합니다.

그 배경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색깔이 단순합니다. 6년 정도가 지나 어른 새가 되면 어깨와 꼬리는 흰색, 나머지는 검은색으로 변합니다. 단순함이 살짝 지나치다 싶은 아쉬움은 부리와 발가락의 주황색으로 채웁니다. 단순함이 드러내는 위용은 복잡함보다 강렬합니다.

또 하나는 사냥 능력입니다. 참수리는 수리 종류 중에서 가장 탁월한 사냥꾼입니다. 참수리의 주요 사냥감은 물고기입니다. 따라서 참수리는 강이나 바다 주변에서 주로 삽니다. 또한 참수리는 오리 종류를 비롯하여 물에서 서식하는 새 종류, 멧토끼, 심지어 수달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새는 크기가 클수록 경계심이 강하며, 같은 크기라도 사냥 능력을 갖춘 새일수록 오히려 경계심이 더 큽니다. 누구를 죽일 수 있으니 그처럼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모양입니다.

참수리는 몸집이 큰 데다 사냥 능력까지 갖추었으니 경계심이 엄청 강합니다. 참수리가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을 만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냥을 하려면 엄청난 비행 속도가 필요합니다. 사냥감을 압도하는 속도여야 합니다.

하지만 속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요리조리 방향을 바꾸며 도망하는 먹잇감을 낚아채려면 그보다 뛰어난 방향 전환 능력까지 갖춰야 합니다. 둘 다 갖추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참수리는 엄청난 비행 속도에다 신속한 방향 전환 능력까지 함께 갖추었습니다. 사냥감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수직으로 내리꽂는 모습은 가히 압권입니다. 수리 종류 가운데 으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이 그냥 붙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관찰의 끝은 나를 향합니다. 나는 사람이니 날마다 참된 사람이기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하여 오늘도 내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대는 진정 참삶을 살고 있는가? 숲에는 많은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선 나무가 있고 기울어진 나무가 있습니다. 기울어진 나무, 카메라를 기울여 바로 선 나무로 바꿀 수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어렵지도 않습니다. 다만 멀쩡히 바로 서 있던 나무들이 모두 기울어진 나무로 바뀝니다. 참된 삶, 이것 하나는 지키기로 다짐합니다. 바로 서지 못한 나를 바로 선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바로 서 있는 남을 바꾸지 말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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