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세트와 오지적 사고

2018.03.19 21:10 입력 2018.03.19 22:04 수정

고착되어 ‘바꾸기 힘든 사고방식’을 영어로는 ‘mindset(마인드세트)’라고 한다. ‘우리가 안다고 믿었던 세계’ 개념은 미셸 푸코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를 그렇게 알도록 만드는 세계의 힘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우리의 앎’ 자체가 세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거대한 착시(optical illusion)라는 것이다. 지식 또는 사고방식의 구성과 관련하여 우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결정적인 단절을 경험한 적이 있다. ‘사대자소(事大字小)’를 명분으로 하는 중국 중심의 사대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에게 서구 근대는 오랑캐의 세계 질서였다. 그러나 양이(洋夷)로만 알았던 세계와 만나며 우리는 오랜 세월 품어왔던 전통적인 천하(天下)가 붕괴하는 경험을 했다. 그동안 하늘인 줄 여기며 살아왔던 세계가 무너진 것이다.

[세상읽기]마인드세트와 오지적 사고

변화는 충격적이었고, 놀라울 만큼 빠르게 다가왔지만, 이런 변화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시작된 것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한 이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세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통해 양국은 세계를 나눠 가지기로 했고, 가상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스페인은 서쪽으로, 포르투갈은 동쪽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 결과 스페인은 멕시코를 차지하고, 아카풀코항에서 출발한 범선을 이용해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다시 일본으로 향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인도에 이르렀고, 말라카 해협을 건너 인도네시아를 거쳐 중국 남부 마카오에 그들의 항구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포르투갈이 개척한 해로를 따라 네덜란드가 왔고, 뒤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왔다. 미국은 대륙횡단철도를 완성한 뒤 본격적인 태평양 경영에 나섰고, 미서전쟁을 통해 쿠바를 비롯한 카리브해 지역에서 스페인을 축출하고, 하와이를 병합했으며, 필리핀을 차지했다. 이처럼 서구 근대 문명이 세계를 경영하고,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며 가장 마지막에 도달한 곳이 그들을 기준으로 ‘머나먼 동쪽(Far East)’,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조선이었다. 한반도는 동쪽과 서쪽으로 출발한 서구 문명이 가장 마지막에 도달한 세상의 끝(borderland)이었다. 우리는 일제 식민 지배, 분단과 전쟁, 이후 냉전체제로 인해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직접 행위자(주체)로 나서기보다는 식민체제와 냉전체제의 하위 파트너 구실에 머물러야 했다.

국제외교와 정치를 연구해온 원로학자 김용구 선생은 이와 같은 역사적 경험과 조건으로 인해 우리가 이른바 ‘오지(奧地)적 사고’에 고착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세계정치의 본질을 자신의 문화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서 세계 다른 지역(중심)의 인식으로 대체하는 세계 인식의 타율성이다. 둘째, 세계정치와 문화를 균형적으로 보지 못하고 편파적으로 수용한다. 자국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정치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기에 국제정치의 표면적인 현상과 형식에 치중한다. 셋째, 오지적 사고는 이와 같은 실패를 다른 정치 세력에 전가하며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없기에 언제나 중심의 이론을 번역하거나 뒤쫓는 수준에 그치게 된다.

최근 우리를 둘러싼 세계열강과 남북한의 관계 변화는 너무나 변화무쌍하여 종잡기 어려울 지경이다. 북핵과 사드 배치를 비롯해 전쟁의 위기가 한반도 하늘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웠다고 염려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 지금 4월에는 남북한 정상이 만나고, 5월에는 미국 정상으로는 최초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다가올 두 달여의 시간이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기간이 한반도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동안 미국만 바라보면서 전쟁 불사를 외치며,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외교에 꾸지람과 훈수를 두던 사람들은 매우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자신의 시선으로 보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며, 자주적으로 선택하지 못하는 국가가 냉혹한 국제질서와 역사 앞에서 주인이 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우리 운명의 조타수가 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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