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주인인지 실감 못하는 민주공화국

2019.12.09 20:57 입력 2019.12.09 21:26 수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그 대한민국의 주인이 국민인지 실감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현실은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란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첫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그는 “불법파견 판정 시 즉시 직접고용 제도화”를 약속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운송설비를 점검하다 사고로 숨졌다. 2018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214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오늘도 살기 위해 출근한 노동자 중 6명이 퇴근하지 못하고 장례식장으로 실려 간다. 오늘도 무사히! 그것이 지금 노동자들의 소망이다.

[세상읽기]국민이 주인인지 실감 못하는 민주공화국

촛불시민의 힘으로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렸다.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를 촛불정부라고 불렀다. 이후 4·3항쟁, 5·18민주화운동 추도식 등에서 대통령의 아름다운 추도사, 각본 없이 진행된 그의 행보는 많은 국민을 감동시켰다. 대통령과 촛불정부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크고 높았기에 실망도 깊은 것일까. 빈부양극화가 이 정부 들어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고, 비정규직 노동자, 산업재해 문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 정부만을 탓하는 것이라면 너무 야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에 이르면 사람들의 말마따나 그 기원을 대한민국이 아니라 ‘헬조선’부터 따져보라는 말인가. 어느덧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지도 절반을 지나 반환점을 돌고 있다.

고백하건대 이른바 ‘수구적폐’라고 욕먹는 정당보다 그들에게 ‘종북좌파’라고 비방당하는 정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체감상의 고통은 더욱 깊고 컸다. 저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차라리 맘껏 비판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에 이어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국민의 시대, 국민이 중심’인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서는 우리가 소망하는 개혁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인데 나만 괜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인가 싶다. 얼마 전 어느 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읽은 글이다. 동네 복덕방 사장이 ‘그때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했는데 왜 집을 구입하지 않았느냐’면서 “아이고, 진짜 바보들이시네. 2년 전이랑 비교해서 지금 40%가 올랐어요. 민주당 정부에서는 무조건 올라요. 무조건 사 놔야 돼.”

20세기 전반기에 인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전체주의와 파시즘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는 자본에 잠식당해 권력의 주인들을 정치상품(정당)의 소비자로 만들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겉보기엔 다양한 상품을 진열해놓고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진열된 상품들은 모두 자본을 등에 업은 독점적인 카르텔에서 생산된다. 비록 다른 상표명과 깃발을 들고 있지만, 새로운 정치혁신, 대안정당의 출현을 가로막을 때만큼은 모두 한패다.

주권재민이란 민주주의의 본질에도 불구하고, 투표기계로서의 역할밖에 할 수 없는 권력의 주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여당 대신 야당에 투표하거나 투표를 포기하는 일밖에 없다. 그러나 주권자의 포기는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의 승리를 의미할 뿐이다. 당연하게도 이 같은 일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자’,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촛불 이후의 우리가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그 무엇인 자’가 될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정부’가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노력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힘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함께 기뻐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여길 때 생겨난다. 지난 토요일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김용균 1주기 촛불집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어머니 김미숙씨는 눈물을 흘리며 “너를 비록 살릴 순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처럼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단다”라고 말했다. 우리, 맞잡은 서로의 그 손을 놓지 말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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