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의 닻을 올리며

2018.03.28 20:40 입력 2018.03.28 20:42 수정

[경제와 세상]에너지전환의 닻을 올리며

2002년 3월21일 목요일 오후였다. 학부 수업을 하고 있던 나는 난데없는 학생들의 웅성거림에 적잖게 당황했다. 그 순간 한 학생이 말했다. “교수님, 밖을 보세요.” 창밖에는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커먼 먹구름이 건물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황사였다. 이날 관측된 PM10 시간당 최대 미세먼지 농도는 2000㎍/㎥를 훌쩍 넘었다. 현재 ‘매우 나쁨’ 일평균 기준이 151㎍/㎥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였다. 역대 최악의 황사였다. 다음 해인 2003년 봄 기상학자, 지리학자, 국제정치학자, 경제학자로 구성된 10명의 황사대책팀에 속해 중국 사막화 지역을 탐사할 기회를 가졌다. 황사는 비 없는 건조지역과 편서풍이라는 기상조건, 목축이나 벌목과 같은 농업활동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 이후 상황은 훨씬 복잡해졌다. 중국은 급격한 산업화와 에너지 소비 증가로 온갖 종류와 크기의 미세먼지를 쏟아냈고, 그중 일부는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로 유입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미세먼지 농도는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점차 감소했다. 지저분했던 나라가 소득 증가와 생활수준 향상으로 점차 깨끗한 나라로 변모해 왔다. 하지만 그사이 산업 활동은 더 왕성해졌고, 자동차와 전기 소비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정부가 클린디젤을 외치는 사이 한국은 디젤차 천국이 되었다. 초미세먼지로 알려져 있는 PM2.5 고농도 일수가 늘어나면서 건강 위해성 인식도 높아졌다. 실제 통계상으로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세먼지 농도는 정체 내지 악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국민이 온몸으로 겪고 있는 미세먼지 공포가 탄생한 배경이다. 바람이나 기압 같은 기상 요인은 우리가 제어할 수 없고, 중국 요인은 외교 역량 대비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산업, 건물, 수송 등 국내 요인에 기인한 가해자에서 모두가 온전히 자유롭지 않다. 개인과 사회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된다.

약 10년 전 일본에서 열린 국제학회에서의 일이다. 모든 참석자가 참여하는 본회의에서 이름이 알려진 일본 원로 경제학자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그는 “2050년이 되면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무탄소 에너지 선언과도 같은 이 말은 나에게 적지 않은 도전의식을 주었다. 평소 환경과 에너지, 지속가능한 발전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다가올 미래의 혁명적 변화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50년 혹은 100년 후의 세상을 말하는 것은 경제학자가 아닌 미래학자 영역으로 치부했던 탓이다. 이론과 데이터가 결합된 엄밀한 분석에 기초하지 않으면 학술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제학계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사이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화석연료 구동 자동차가 야기하는 여러 부작용과 전기차의 빠른 기술혁신으로 10년이 지난 지금 ‘석유 없는 세계 자동차 시장’을 예측하는 것은 더 이상 놀랍거나 혁명적이지 않아 보인다.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특집기사에서 재생에너지의 급성장에 따른 ‘에너지전환(Energiewende)’ 흐름이 글로벌 에너지 지정학을 뒤바꿀 것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선두주자였던 미국이 주춤하는 사이 독일과 중국이 무섭게 올라오고 있으며, 전통에너지 공급을 고수하는 사우디와 러시아는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한다. 분산형 에너지원인 재생에너지가 지역공동체를 튼튼하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이 기사 어디에도 한국은 언급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OECD 꼴찌, 에너지 효율성 OECD 최하위, 국토 면적 대비 원전설비 규모 세계 1위, PM2.5 연평균 농도 OECD 1위인 나라에서 미래지향적 기삿거리가 나올 리 없다.

언제까지 내가 타는 디젤차는 미세먼지 주범이 아니니 건드리지 말라고 할 것인가. 언제까지 원전 안전을 위협할 지진은 절대 없을 거라고 자위하며 살 것인가. 언제까지 에너지다소비 산업구조는 만고불변의 경쟁력이라고 고집할 것인가. 언제까지 대한민국 전기사업을 사실상 하나의 기업이 독점하는 시장형태를 고수할 것인가. 언제까지 싼 에너지 마음껏 쓰라며 국민을 호도하고 미래세대를 간과하는 무책임한 정책에 매몰돼 있을 것인가.

국가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담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화석에너지와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체계가 미래세대와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여 에너지절약과 효율향상,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체계를 전환하는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시민과 기업,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에너지 나무 심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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