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국가재정전략회의에 달렸다

2018.03.21 21:03 입력 2018.03.21 21:11 수정

[경제와 세상]일자리, 국가재정전략회의에 달렸다

경제학자들이 잠재성장률이란 말을 자주 쓴다. 잠재성장률이란 한 나라가 동원할 수 있는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서 물가상승의 부작용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말한다. 경제학자들은 현재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2% 후반대로 보고 있다. 작년 경제성장률이 3.1%이므로 잠재성장률을 넘는 경제성장을 한 셈이다.

그런데 물가는 한국은행 목표 물가상승률 2%보다 낮고, 실업률은 3.7%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고 청년실업률은 9.8%로 정부가 지난주 특단의 청년실업대책을 발표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보수 경제학자들은 실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높기 때문에 한국 경제는 지금 총수요 부족 상태가 아니며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라고 본다. 이들은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핵심 문제이며, 규제완화, 법인세 감면, 대기업 부문의 노동 경직성 완화, 혁신성장 등 한국 경제의 공급능력을 강화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도 총수요 확대 정책은 부정하지만 지금 실업률이 완전고용 실업률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한다.

잠재성장률은 완전고용 실업률 수준을 정확하게 말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이 계량경제 모델을 동원해 조작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참고지표에 불과하다. 거시경제 정책 판단을 할 때 중요하게 봐야 할 기본 지표는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이다.

실업 문제가 심각한데도 잠재성장률 지표를 갖고 총수요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 신화같이 사람 키를 침대 길이에 억지로 맞추려는 궤변이다. 실업이 심각한데, 총수요 부족을 방치하면 장기실업자의 인적자본 손실, 실망실업에 의한 비경제활동인구 증가, 기업 투자의욕 감퇴 등으로 총공급도 총수요에 맞춰 축소 조정된다. 즉 잠재성장률이 실제성장률에 수렴하는 거시경제의 이력(hysteresis)효과가 발생한다.

인플레이션율이 낮고 실업률이 높을 땐 총수요 확대 정책을 쓰는 것이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 말하는 보편 경제정책이다. 한국 경제의 심각한 내수 부족은 이미 오래되었고, 거시경제의 이력효과도 작동하고 있다. 수출로 내수 부족을 보완했지만 GDP 대비 수출 비중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일 뿐만 아니라 보호무역주의 물결 속에서 수출만으로 총수요 부족을 돌파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GDP 대비 투자 비율도 한국이 주요 선진국들보다 훨씬 더 높다. 한국은 법인세를 인하해 투자 규모를 증가시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투자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의 내수 침체는 소비와 정부 지출이 지나치게 작기 때문이다. GDP 대비 소비 비율은 1998년 외환위기 때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가계소득 증가가 정체되고 가계부채 급증으로 소비 여력도 떨어졌다. 소비를 높이기 위해 최저임금과 기초연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펴고 있지만 효과를 내려면 시간이 걸린다. 2018년 GDP 대비 일반정부 지출 비율은 한국이 3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40.1%보다 8.6%포인트 낮다. 한국의 정부 지출이 OECD 최저 수준인 것은 사회복지 지출이 낮기 때문이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비정상적으로 사회복지 지출을 적게 하고 있고 이 때문에 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낮은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당연히 사회복지 분야의 취업자 비중도 OECD 국가들의 절반에 불과하다. 따라서 비정상적으로 낮은 사회복지 지출을 정상화해 정부지출을 늘리면 일자리도 대규모로 만들어진다. 최저임금 인상은 불평등을 완화하지만 고용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삶의 질을 개선하지만 일자리 나누기 효과뿐이다. 청년고용지원금이 중소기업 인력부족과 청년실업의 미스매치를 줄이지만 청년이 바라는 좋은 신규 일자리를 만들지는 못한다.

일거리가 생겨야 신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정부가 최저임금정책보다도 더 과감하게 해야 하는 것은 일거리를 만드는 총수요 확대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이 꼭 필요로 하는 사회복지 지출을 과감하게 늘리되, 좋은 일거리 확대로 연결되도록 해 청년들이 가려는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4~5월 초 어느 시점에 대통령과 국무위원이 다 모여 2019년 예산과 향후 5년간의 국가재정운용계획 방향을 정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한다. 이 회의에서 사회복지 지출을 중심으로 정부지출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켜 좋은 일거리·일자리를 만들어내고 한국 경제의 저성장 침체를 타개하는 과감한 재정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일자리정책 성패는 여기서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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