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코끼리’를 만날 때

2018.09.17 20:49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가 자꾸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아직 코끼리를 만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의 시간은 1년을 조금 넘겼다. 브루킹스연구소 폴 C 라이트의 저서 <대통령의제>에 따르면, 대통령자원은 임기가 지날수록 쇠퇴하는 자원과 성장하는 자원으로 구분된다. 쇠퇴하는 자원은 시간, 파워 등이고, 성장하는 자원은 정보, 전문지식, 학습효과 등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책추진의 영향력은 감소하지만, 효율성은 증가한다. 쇠퇴하는 자원은 그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증가하는 자원은 잘 활용해야 한다. 대통령의제는 대부분 대중의 관심, 즉 국민여론이 만든다는 것이 폴 C 라이트의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민이 부여한 의제는 무엇일까.

[세상읽기]문 대통령이 ‘코끼리’를 만날 때

대선 직후 지지 이유를 묻는 여론조사(2017·5 이하 갤럽)에서 ‘적폐청산 및 개혁’ ‘정권교체’ ‘개인평가’ ‘타 후보가 싫어서’ ‘신뢰’ 등의 순으로 응답됐다. ‘적폐청산 및 개혁’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 국민은 오랫동안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찌꺼기를 거둬내는 일을 대통령의제로 설정한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2017·6) 후 역대 대통령 첫 직무수행평가 중 가장 높은 84%를 기록했다. ‘국민과의 공감소통’ ‘인사’ ‘전반적으로 잘함’ ‘공약실천’ ‘적폐청산 및 개혁’ ‘추진력 및 결단력’ ‘일자리 및 정규직화’ 등이 주된 이유로 언급됐다. 임기 초반 대통령 개인자원인 파워는 잘 발휘되었지만, 초기 설정된 대통령의제는 순위에서 조금 밀렸다.

최근 여론조사(2018·9)에선 긍정 49%, 부정 42%로 국정수행 평가격차가 크게 줄었다. 긍정평가 이유는 ‘북한관계’ ‘대북안보정책’ ‘열심히 함’ ‘서민 및 복지확대’ ‘외교’ ‘국민과의 공감소통’ ‘적폐청산 및 개혁’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대북관계와 복지 및 외교 등으로 대통령의제가 다변화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기에 설정된 ‘적폐청산 및 개혁’은 순위에서 좀 더 밀렸지만, 생명력을 가지고 의제로 남아 있다. 부정평가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도 확인했는데, 주로 ‘경제민생 해결부족’ ‘친북성향’ ‘최저임금’ ‘부동산’ ‘일자리 부족’ ‘과도한 복지’ 등이었다. 1년 전, 긍정평가 순위에 있던 고용 문제를 포함한 민생, 부동산 등 경제현안이 부정평가 최대의제로 부상했다. 긍정평가에선 대북현안이, 부정평가에선 경제현안이 중심 이슈로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하면 대통령의제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첫째, 국민이 설정한 의제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의제에 집중해야 한다. 국면전환을 위한 새로운 의제설정 혹은 자의적인 의제전환은 자구적 함정이 될 수 있다. 둘째, 설정된 의제가 장기적인 추세에서 형성되었다면, 즉자적인 대응보다는 국정기조의 틀 안에서 구체적인 과제로 다뤄야 한다. 그래야 유기적 인과관계에 놓여 있는 여타 정책들과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셋째, 임기 내 해결할 수 있는 과제와 그렇지 않은 과제를 구분하여 자원의 불필요한 소모를 막아야 한다. 넷째, 신속하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부터 추진해야 한다. 다섯째, 대통령 자원 중 개인파워는 아직 쇠퇴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공감능력과 소통능력을 활용하여, 과제추진의 과정 및 결과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책캠페인에 소홀해선 안된다. 그렇다면, 대통령의제를 망가뜨릴 수 있는 요인도 있을까.

그 코끼리 이야기다. 세금폭탄, 종북좌파, 아마추어리즘 등 외부에서 쏟아지는 의제왜곡에 주의해야 한다.

내부에선 의제가 흔들리면 지지회복을 위한 중도편향 확대를 시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나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도는 성격 측면에서 소극진보와 소극보수, 성향 측면에서 공정진보와 경제보수가 비동시적으로 혼재되어 공존한다. 이들은 노선변경이나 편향확대로 소통할 수 있는 계층이 아니다. 때론 진보적이고 때론 보수적인데, 그 이유는 과제해결능력을 중시하는 스윙보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젠가 코끼리를 만나게 되면, 무소의 뿔처럼 의연해야 한다. 대통령의제는 국민이 설정한 대로, 있는 그대로. 주어진 의제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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