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2018.10.01 20:38 입력 2018.10.01 20:41 수정

사람을 만난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어색하게 인사를 한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농담을 던진다. 무표정한 사람이 웃는 사람이 되는 걸 보고 싶다. 아뿔싸! 농담이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헤어질 때 또다시 인사를 한다. 농담을 수습하다 정작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다. 다음 만남이 있기 전까지는 나는 그에게 객쩍은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직설]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에 오른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사이좋게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화면을 보며 낄낄거리는 사람도 있고 화면을 잽싸게 두드려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다들 각자의 일과로 바쁘다. 갑자기 전동차 안에 전화벨이 울려 퍼진다. 사람들의 눈길이 한곳으로 쏠린다. 머리를 긁적이며 전화를 받는 사람이 있다. 마치 30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다.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를 향해 걸어간다.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덩달아 내 걸음도 빨라진다. 늦은 것도 아닌데 쫓기듯 걷고 있다. 자신의 리듬을 잊거나 잃고, 사람들이 떠밀리듯 걷는다. 급기야 계단을 오르다 한 사람이 넘어지고 말았다. 그 사람을 피해서 사람들이 계단을 오른다. 제 갈 길을 가는 여느 사람들이다. 그 사람에게 “괜찮아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따뜻한 사람이다. 부축을 받고 일어난 사람이 출구 밖으로 비틀비틀 사라진다.

거리 위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천천히 걷는 사람, 친구와 손잡고 나란히 걷는 사람, 음악을 들으며 어깨를 들썩이는 사람이 있다. 가을볕이 따가운지 손차양을 만드는 사람도 보인다. 짐을 든 손의 아귀에 힘을 집어넣는 사람, 오늘 뜬 구름의 표정을 헤아리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 역사 내에서 잃었던 자신의 리듬을 되찾았다. 평온하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본다. 살피기 시작한다. 헤아리기 시작한다.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랩톱을 펼치고 열심히 무언가를 기록하는 사람이 보인다. 글을 쓰는 것일까? 무슨 글일까? 무엇이 그를 쓰게 만드는 것일까? 커피가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 무슨 책일까? 무엇이 그를 읽게 만드는 것일까? 가만히 있는 사람들조차 표정이 풍부하다. 다들 각자의 사연으로 법석인다.

사람들을 만난다. 종종 만나는 사람들이다. 지난주에 만났던 사람도 있고 어제 연락했던 사람도 있다. 머리 잘랐구나,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얼마 전에 착수했다는 작업은 잘되어가니, 낯빛이 좋지 않은데 무슨 일 있는 것 아니지?…. 서로에게 마음을 쓴다. 서로를 향해 관심을 기울인다. 다들 각자의 마음 씀씀이로 바쁘다. 마음은 닳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나누면서 점점 부풀어 오른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이라 사람을 돕고 사람이라 사람을 외면한다. 사람이라 사람에게 실망하고 사람이라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것을 갚기 위해 골몰하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이라 사람에게 다정하다. 사람이라 사람을 향해 마음이 기울어진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절망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것도, 지푸라기나 동아줄로 군불을 지피는 것도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것도 사람이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위기에 처한 생면부지의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것도 사람이다. 하루 안에 위로와 축하를 둘 다 전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자신만의 사연을 어떻게든 기록하려는 것도 사람이다. 그 사연을 통해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떠올린다. 그때 함께 있었던 사람을, 지금 함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을 사람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조차 사람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이제야 겨우 사람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어렵다고, 사람에게 실망했다고, 사람이 좋다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 있다. 사람은, 사람이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