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나무

2019.01.07 20:55 입력 2019.01.07 21:01 수정

@최영민

@최영민

단 한 그루의 나무를 위해서도 그 나무만큼의 햇빛이 정확하게 드는 법이다. 오늘 내가 찾는 나무는 홀로 우뚝한 교목이 아니라 어울려 사는 관목이다. 그것도 울타리로 심기에 적당해서 일제히 줄을 맞추고 관리당하는 나무이다. 나무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줄기에 날개가 있다. 그 나무를 볼 때면 나는 옛날의 한 시절로 득달같이 달려간다.

부산으로 전학 가던 날. 천일여객 낡은 시외버스는 거창 차부를 떠나 합천, 창녕, 밀양, 삼랑진을 거쳐 탈탈거리며 갔다. 차의 진동에 너무 많이 시달렸다. 발등이 조금 부어올랐고 신발은 뻑뻑해졌다. 비슷하게 출발한 해도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세상에서 가장 길다는 구포다리를 건넜다. 여기가 부산의 입구인가. 이리저리 구경거리에 눈을 부라리는데 희한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처음 보는 네온사인 아래 어느 공터에서 둥그런 채를 가지고 하얀 러닝셔츠를 입은 두 사람이 공중에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놀고 있었다. 아니, 세상에, 백열전등을 저렇게 가지고 놀다니! 역시 도시사람들은 대단해!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배드민턴 공이었다. 산에 입문하고 나무의 특징을 통해 나무를 알아갈 때, 그 나무에 관한 설명을 들을 때 내가 쏜살같이 달려간 곳은 바로 구포다리 근처 어느 공중에 오르락내리락하던 그 신기했던 백열전등이었다. 그 나무 줄기의 날개와 배드민턴 공, 다시 말해 셔틀콕의 날개는 어쩌면 그리도 서로 닮았는지.

시계가 없다고 시간마저 없어지는 건 분명 아니다. 시간이 시계에서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는 정도의 분별력만 있었더라면! 여러 우회로를 거친 뒤에 나는 오늘 인왕산의 둘레길을 걷고 있다. 멀리 단정한 그 나무가 보인다. 나무가 저곳에 있기 위해선 나무를 띄우는 햇빛만큼이나 시간도 정확히 필요했다. 새해 지나고 벌써 일주일, 고여 있는 시간의 웅덩이인 듯 첫주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제 기해년도 제 시간의 봉투를 뜯겼으니 셔틀콕처럼 또 빨리 흘러가겠지. 줄기에 날개가 발달한 화살나무 옆을 지나는 오늘은 소한(小寒)이다. 화살나무, 노박덩굴과의 낙엽 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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