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사회와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2019.03.06 20:30 입력 2019.03.06 20:35 수정

성리학의 고전 예기(禮記)의 예운편은 이상적인 공정한 사회를 “천하가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되어” 안정된 삶과 복지가 보장되는 사회라고 하였다. 서양 정치철학 전통에서도 공평무사의 원칙이 그 기본질서를 결정하는 사회를 공정한 사회로 본다. 존 롤즈는 출신과 사회경제적 배경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를 말했다. 이른바 포용국가는 이러한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제직필]공정한 사회와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고전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와 존 스튜어트 밀은 포용적 국가발전과 시장경제 간의 상보적 관계를 중요시했다. 이들은 지금 우리가 친숙한 경제학보다 더 깊게 ‘인간의 진보’와 발전 그리고 국가의 역할에 대하여 고민했다. 인간의 합리성에 대해서도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라 정의(正義)와 인애(仁愛)의 덕과 현명한 이기심(prudence)이 결합되어 행동을 지배한다고 이해했다.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경제발전을 방해하는가? 국가는 경제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지금 한국 경제와 국가정책을 둘러싼 여러 논쟁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세계 경제의 지난 반세기의 경험을 통하여 주류경제학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단선적이고 물질주의적인 합리성과 순진한 공학적 접근, 우리가 흔히 과학일 뿐이라 착각했던 그런 경제학의 무기력을 경험했다. 한편으로는 복합적 합리성과 인류의 진정한 경제적 진보에 대한 성찰 그리고 포용적 국가 시스템과 경제발전의 복잡한 인과의 사슬에 대해 고민이 대두되었다.

전통 경제성장론과 주류경제학자들은 분배적 공정성과 경제성장이 상충한다고 말해왔다. 불평등한 경제가 때로는 성장을 촉진한다고도 했다.

이런 낡은 경제학은 선진국 경제발전의 역사 그리고 개발도상국 경제개발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장기적 경제성장이 지체되고 평등한 나라일수록 성장이 더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정부의 개입과 재분배는 대체로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간 축적된 경험 자료들에서 짐작되는 사실이다.

정부의 적극적 소득재분배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하여 1990년대 이후로 많은 경제이론과 가설이 제시되었다. 이들이 말하는 주요 경로에는 교육과 인적자본 투자, 기회평등과 높은 계층이동성으로 강화되는 근로 의욕과 투자 동기, 내수확장으로 인한 기술발전의 가속화, 사회 안정으로 인한 투자환경의 개선, 사회적 연대와 통합의 긍정적인 효과 등이 있다. 그밖에 아직도 밝혀야 할 여러 경로들이 있다.

개발경제학자들은 동아시아와 남미경제의 비교를 통하여 동아시아의 초고속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낮은 불평등, 기회평등, 높은 교육열과 인적자본 축적에서 찾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로 이러한 성장동력들이 파괴되고 있고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인의 삶의 질은 경제의 양적 성장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정부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자본은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고 남미와 같이 부패한 사회로 인식된다. 경제적 불평등은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급격히 상승하였고 정부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최하위권이다. 부의 불평등 역시 2000년대 이후로 급속히 악화되는 추세이고 최근에는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최상위권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평등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인 기회불평등 역시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세대 간 계층이동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노동과 창업을 통한 성공의 기회불평등, 그리고 교육을 통한 성공의 기회불평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고 과반수의 국민이 절망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이처럼 망가진 성장동력을 회복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시급한 과제다. 이제는 국가의 재분배 기능을 확충하고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며,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여 포용적 국가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경제정책은 소수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적 성장에 의존해왔다. 이런 성장은 더 이상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용적 국가시스템은 공정한 시장질서를 정착시키고 혁신적 경제체질을 구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불공정한 경제는 재벌과 기득권세력의 지대추구로 인한 비효율과 국민의 희생을 야기한다. 포용적 국가시스템은 오히려 시장을 정상화하여 공정한 경쟁과 혁신을 활성화하는 지름길이 된다. 혁신성장을 추구하는 산업정책과도 상보적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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