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소득공제의 부작용

2019.03.13 20:20 입력 2019.03.13 20:28 수정

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식당이나 개인병원, 택시 등에서 결제를 할 때에는 현금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혹여라도 손님이 신용카드로 결제하겠다고 하면 업주와 손님 간에 크고 작은 말다툼이 일어나기 일쑤였다. 당시만 해도 소액결제는 거래기록이 남지 않는 현금으로 하는 것이 암묵적 관행이었다. 신용거래의 정착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고 세무당국은 자영업자들의 소득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 간 세부담의 불공평함이라는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근로소득자의 지갑은 ‘유리지갑’이라는 말도 이러한 배경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표현이다.

[경제직필]신용카드 소득공제의 부작용

이러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 ‘신의 한 수’가 바로 신용카드 및 현금영수증의 소득공제제도였다. 신용카드 사용금액과 현금영수증 액수의 일정 부분만큼 소득공제가 가능하니 손님들은 신용카드 사용이나 현금영수증 발급을 당당히 요구하였고 업주들은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제도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에 한시적으로 (3년) 도입되었는데 그 효과가 예상외로 좋으니까 일몰이 도래할 때마다 계속 제도를 연장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2017년 현재 연간 급여액의 25%를 초과한 신용카드 사용금액의 15%를 300만원 한도 내에서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제도는 신용거래의 정착과 자영업자의 과표양성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였다. 민간의 최종소비지출 중 신용카드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말 50% 미만이던 것이 2016년에는 거의 70%에 이르게 되었다. 직불카드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19%이니 이를 합하면 거의 90%의 민간소비 결제가 신용카드와 직불카드로 이루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소득원도 이제는 매우 투명하게 파악되어 근로자만 봉이라는 인식도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일반인의 통념과 달리 2017년 국세통계연보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오히려 거의 모든 과표구간에서 자영업자들의 실효세율이 근로자들의 실효세율보다 더 높게 나오고 있다. 여기에 더해 신용카드 회사가 소비자에게는 신용카드 사용료를 부과하지 않으면서 카드가맹점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신용카드사업을 운영하면서 최근에는 자영업자가 근로소득자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한 것이 사실이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제도는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신용카드 발급이 남발되고 사용이 빈번해지면서 신용불량자가 증가하고 가계부채가 증가하였다. 무엇보다 신용카드 공제제도는 신용카드 결제를 더 많이 하는 고소득자일수록 더 많은 소득공제를 받게 되어 세부담이 역진적이라는 점이 있다. 물론 공제한도가 설정되어 있어 고소득자라 할지라도 그 혜택을 무한정 받을 수는 없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소득 근로자에게 유리한 제도임에는 말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직계존속의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해서도 공제를 받을 수 있고 신용카드로 결제한 의료비는 신용카드 소득공제와 의료비 공제를 동시에 받는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액은 2017년 기준으로 이미 24조원이 넘고 세금감면액만 2조원에 달한다. 이는 같은 해 조세지출액의 5~6%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결코 적지 않은 액수이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홍남기 부총리는 3월 초 납세자의날 기념식에서 “신용카드 소득공제와 같이 도입 취지가 어느 정도 이뤄진 제도에 대해서는 축소 방안을 검토하는 등 비과세·감면제도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신용카드 소득공제제도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제도이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 직장인의 다수가 공제제도 유지를 희망하고 이에 편승하여 일각에서 근거 없는 ‘중산층 증세 음모론’을 제기하는 등 소란이 일자 며칠 전 방향을 갑자기 급선회하여 올해 말 일몰을 앞둔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연장하겠다고 한 것이다. 많든 적든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혜택을 본 사람은 이미 968만명에 이른다. 한시적으로 도입된 제도가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점점 폐지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신용카드 사용이 충분히 팽창해서 더는 이를 독려할 필요가 없고,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 역시 상당 수준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소득공제 활용으로 조세지출부담이 매년 커질 뿐 아니라 그 부담 또한 역진적이다. 조세재정연구원과 국회 예산정책처 등도 장기적으로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유지해야 한다면 공제율 및 공제한도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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