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없는데 ‘일자리’가 늘까

2019.02.27 21:21 입력 2019.02.27 21:25 수정

일자리논쟁은 이제 경제문제를 넘어 이데올로기, 양극화, 세대 갈등 등 경제 이상의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21세기 들어 역대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내걸었지만, 늘기는커녕 실질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경제직필]‘일’이 없는데 ‘일자리’가 늘까

소비 패턴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우리는 어느 곳을 가든지 스마트폰으로 주변 맛집을 찾는다. 그리고 줄을 선 후 그 유명 맛집에서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옷뿐만 아니라 가구, 가전제품, 화장품, 서적의 온라인 구매 비율은 이미 20%를 넘고 있다. 최근에는 음식료품의 온라인 구매 비율이 급증하면서 가정간편식(HMR)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 등 많은 식당에서는 기계가 주문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다른 장면을 생각해 보자. 요즘 백화점, 대형할인점 등은 일반 상품 판매뿐 아니라 식당 장사가 더 짭짤하다. 추가로 극장, 어린이 놀이시설 등도 완비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대형 몰에 들어가면 거기서 모든 소비가 이루어진다. 더군다나 외식업이나 화장품 가게들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체인화되면서 자영업자나 재래시장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안착하면서 기업들의 접대비 사용도 제한받고 있다. 여기에 미투 운동과 52시간 근로를 감안하면 직장의 단체 회식이나 사내 행사가 어려워졌다. 저성장으로 현재의 삶이 어렵지만 자신만을 위한 해외여행, 명품 구입, 먹거리 탐닉은 여타 소비를 줄이면서도 마다하지 않는다. 2018년 해외 소비는 무려 36조원이나 되었다.

지난 20년 동안은 방(room)의 전성시대였다. 노래방, 찜질방, PC방, 스크린골프 등 새로운 놀이 문화가 확산되면서 소비가 늘고 일자리도 만들었다. 그런데 고령화 현상이 본격화되면서 이 모든 ‘방’들이 공급과잉 상태다. 새로운 소비를 이끌던 빵집, 김밥집, 베트남 쌀국수, 커피전문점들도 한계에 봉착했다. 내수를 부양하던 ‘방’과 새로운 먹거리들이 이제는 일자리를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군다나 1530조원의 가계부채를 연 4% 이자율로 계산하면, 무려 60조원 이상의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

이제 소비의 모든 대상이 공급과잉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지난 5~6년간 꾸준히 이어진 구조적 전환이다. 그렇다면 요즘의 논쟁처럼 일자리 부족이 오직 최저임금 인상이나 52시간 근로 시간 규제 때문일까? 물론 이 두 가지 정책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경영 환경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요인에 불과하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사회 모습과 소비패턴이 바뀌면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런 추세에 고령화와 양극화 현상이 더해지면 향후 실업률은 더 빠르게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통계로 보면 지난 5년간 전체 취업자는 134만명 정도 늘어났다. 그런데 같은 기간 60세 이상 고용도 비슷하게 증가했다. 결국 지난 5년간 일자리는 고령자 중심으로 늘어났고, 20~50대 일자리는 거의 늘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 30대 중후반 이상의 여성 취업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육아 부담에서 벗어난 주부들이 대거 취업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추가로 근로연령 상한이 65세로 늘어났기 때문에 향후에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일자리를 놓고 다투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습관적으로 우리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일자리는 ‘일’이 먼저 생겨야 가능하다. ‘일’을 만들지 않고 ‘일자리’만 만들면 사회 전체가 비효율적으로 바뀐다. 물론 극심한 양극화에 대한 해법으로 지금과 같은 일자리 창출을 통한 복지정책도 필요하지만, 이런 식의 일자리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사회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성장) 과정에서 ‘일’을 만들 때에만 본질적인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최근 정부도 기존의 소득주도성장과 성장정책을 병행하려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특성 때문에 단순히 성장정책을 추가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늘지는 않는다. 사회 전체의 변화를 감안한 장기적 시각을 기반으로, 사회 각 영역 간 양보와 타협을 통해, 경제의 파이를 늘릴 때 비로소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경제 환경의 근본적 변화를 감안하면서 한국을 완전히 재편할 각오와 실행력이 없다면 앞으로 일자리는 늘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 문제가 정치투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전혀 현실감각이 없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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