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달프게 하는 ‘결정장애’

2019.10.01 20:52 입력 2019.10.01 20:56 수정

음식점에 가서 상대방이 “뭐 먹을래?” 할 때마다 난 “아무거나 다 괜찮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지 말고 먹고 싶은 걸 골라보라고 해도 끝까지 ‘아무거나’를 고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실제로 ‘아무거나’라는 안주를 내놓는 술집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얼마 전 ‘훠거’라는 중국 음식을 먹어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음식이었다. 일종의 샤부샤부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은 물론 맛이 있었다. 그런데 냄비 하나를 둘로 나누어 한쪽은 붉고 매운 맛을, 다른 한쪽은 우리의 곰탕처럼 전혀 반대의 맛을 내게 만들어 놓은 것도 내 눈엔 신기해 보였다. 적어도 매운 걸 먹을지 말지를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신선한 발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공감]삶을 고달프게 하는 ‘결정장애’

그 비슷한 것 중에 우리나라 치킨집에는 ‘반반에 무 많이’라는 메뉴도 있다. 실제 그런 이름의 메뉴가 있다기보다는 ‘양념 반, 프라이드 반에 무는 많이!’라는 식의 주문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역시 양념치킨을 먹을까, 프라이드치킨을 먹을까 하는 선택의 갈등을 해결해 주는 발상의 하나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딜레마는 아무래도 ‘짬뽕을 먹을까, 짜장면을 먹을까’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그 고민은 중국식당에 갈 때마다 반복된다. 그 둘을 한 그릇에 담아내는 ‘짬짜면’이라는 메뉴도 있다. 하지만 그런 메뉴가 없는 곳이 더 많다. 그래서 여전히 나 역시 짬뽕과 짜장면 사이에서 마음이 둘로 나뉠 때가 더 많다. 동행한 사람들과 각자 다른 메뉴를 주문해 나눠 먹자고 합의(!)를 보는 때도 있지만, 늘 내가 주문한 것보다는 상대의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행히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크고 작은 선택의 딜레마를 경험할 때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일어난다. 그때마다 “아, 난 정말 결정장애인가 봐!”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껴본 사람들은 아마 그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번부터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굳은 결심을 하지만 역시 번번이 그 결심이 무너지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더욱더.

우리가 이처럼 크고 작은 일에서 속칭 ‘결정장애’를 겪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뭐니뭐니 해도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욕심이 눈앞을 가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어느 한쪽을 결정하는 데 순간적으로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뒤로 미루는 버릇도 어느 정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게으름 때문이든, 완벽주의 때문이든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는 습관이 있는 사람일수록 선택의 순간에서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무슨 일이든 덤벙대기부터 하는 타입도 결정장애를 경험할 확률이 높다. 정보처리 과정이 허술하다고나 할까. 그런 경우 뭔가를 집중해서 보거나 주의 깊게 귀 기울여 듣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마음만 앞서서 허둥거리다 보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니 당연히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감이 없는 타입도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타입은 자기주장이 힘들다. 웬만하면 상대방의 결정에 따르고자 한다. 만에 하나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어쩌나 싶어 불안해하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한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결정장애를 가졌다면 사는 게 약간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따라서 느리더라도 그 버릇을 고치는 편이 낫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렸으면 그것을 번복하지 않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뭔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그 순간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숲으로 난 두 갈래 길에서 내가 왼쪽 길로 가기로 결정했다면 나머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깨끗이 버려야 하는 것처럼. 물론 하루아침에 달라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쉬운 예로 양념치킨을 먹기로 결정하고 주문했으면 프라이드치킨에 대한 미련은 싹 버리는 식으로. 그러므로 당분간 ‘반반에 무 많이’보다는 과감하게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 보는 시도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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