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불신하는 교육정책

2019.10.07 20:46 입력 2019.10.07 20:48 수정

수년 전 심각한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여학생을 상담했다. 교실에서도 털모자를 벗지 않았고, 선생님이나 친구들도 그런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궁금해서 상담을 위한 공감대(라포)가 형성되기를 기다려 물어봤다. 빙긋 웃으면서 모자를 벗는데 놀랍게도 짧게 자른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동전만 하게 머리카락이 뽑힌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다. 용모에 신경을 쓰는 여고생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모습이라 이렇게 된 이유를 물어봐도 되느냐고 했더니,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학습이나 생활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스스로 머리카락을 뽑는 것이 버릇이 되었단다. 유치원에 다닐 때 자기 앞에서 어머니가 음독자살하는 모습을 본 이후로 그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정신과 집중치료도 받았고 현재도 병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머리카락에 손을 대는 것만은 끊을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학교의 안과 밖]교사를 불신하는 교육정책

학생의 그런 증상이 드라마틱하게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꿈을 사회복지사로 정하고, 자기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면서였다. 자신이 가장 힘든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가 진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체험과 탐구를 하면서,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전문가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스스로 마음을 치유하는 길을 찾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특별한 트라우마가 있는가 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추억으로 이루어진 트라우마도 있다. 1980~19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남학생들이 학교 교사들에게 당한 구타나, 여학생으로서 경험한 성적 추행들은 그 세대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트라우마의 근거가 된다.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각목으로 반 전체를 구타하는 모습이나 여학생들의 속옷을 들추고 음담패설을 일삼는 교사들의 모습은 지금 보면 끔찍하지만, 인권의 가치가 무시되던 시절에는 일상이었으니 이제 중년이 된 세대들에게는 교사라는 존재가 어떻게 각인되었을지는 뻔하다.

문제는 이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기성세대가 현재의 학교현장을 과거의 기억으로 판단하여 교사들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한 교육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중·고 교육의 기본 틀이 되는 2015 개정교육과정은 교사들의 주도적 역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단순히 외부의 평가를 대비한 수업이 아니라 수업 자체에서 교육의 효과와 가치를 찾아 평가까지 이루어지는 일체형 교육을 추구하는데, 이런 교육과정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면서 부정하는 흐름이 정치권에 있고, 그 기저에는 앞서의 트라우마가 깔려 있다. 이런 흐름은 결국 교육전문가들의 의견보다는 목소리 큰 학부모들에 끌려다닌 결과이기 때문에 국가교육의 비전보다는 오로지 계층 간, 지역 간 입시경쟁에만 매몰되는 결과가 된다.

앞의 사례와 같이 개인의 트라우마도 미래를 향한 꿈과 희망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극복되었는데, 교육의 미래가 과거의 집단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는 국가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교사들을 믿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시라. 그들은 정치권이 좋아하는 수능 고득점을 받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믿을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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