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높은 대학을 향한 마음

2019.11.11 20:47 입력 2019.11.11 20:49 수정

지난해 한 여학생을 만났습니다.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공부에도 정말 최선을 다했던 학생인데 안타깝게도 지난해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고 재수를 선택했습니다. 올 1월부터 시작한 재수생활은 집 근처 서울 중계동 재수학원에서 시작하여 대치동의 재수종합반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환경 좋은 강가에 위치한 재수종합학원에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스스로 독하게 마음먹고 집에는 거의 다녀가지 않았고, 부모님이 생필품을 공수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큰 비용이 드는 것도 모두 감내할 정도로 온 가족이 혼연일체로 재수생활을 버텨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무척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높아져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답니다. 뻔한 살림살이에 수천만원의 비용을 들여서 재수생활을 했지만 원하는 수준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할 경우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합니다. 저도 가끔 만나서 심리상담을 하는데 그때마다 밝은 모습으로 저를 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너무 애처롭습니다.

[학교의 안과 밖]더 높은 대학을 향한 마음

이런 상황의 재수생들이 전국적으로 수만명입니다. 물론 공식적인 재수생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지만 형식적인 재수를 하는 학생들이나 대학을 다니면서 반수를 선택한 학생들의 경우는 다르게 보아야 하니 그 정도가 됩니다. 이들이 재수를 선택한 이유는 다 제각각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인정받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철저하게 서열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경기도의 한 지역에서 클러스터 수업으로 여러 학교의 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능 모의고사로 전국 학생들 사이에서 줄을 세워보면 이 학생들의 성적이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선 우수 학생들이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온다 해서 이 학생들이 우수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진로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고 토론하고 탐구학습을 하는 역량은 다른 어떤 학생들과 비교해도 뛰어나다고 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온 가족이 함께 재수 총력전을 치르고 있는 앞서의 그 여학생과 제가 지도하는 클러스터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여러모로 많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 정도 수준의 학생들이라면 목표하는 대학들도 대개 비슷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재수를 하는 그 여학생이 제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지난해 수시전형에서 서울의 상위권 대학 한 곳에 합격했는데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에게도 알리지 않았답니다. 그 학교보다 더 높은(?) 대학을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그 대학 합격을 주변에 알리면 차마 재수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결단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 여학생은 자신이 다닐 대학의 위상이 자신의 일생을 규정짓게 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만일 그때 저와 상담을 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요? 1년간의 재수생활이 아니라 대학생활을 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요?

수능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집니다. 서열화된 사회를 만들어 놓고 그 정상을 향해서 달려가도록 만든 어른들의 욕망에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현실이 마음속을 파고듭니다. 수능시험을 잘 치르라고 환하게 웃으며 응원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를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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