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문제,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

2019.11.20 17:44 입력 2019.11.20 22:41 수정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대내외의 악조건 속에서도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하시는 대통령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화요일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진솔한 마음으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대통령님의 인식이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져 보여 고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혹여라도 대통령님의 인식이 옆에서 조언하는 청와대 참모들이나 고위 관료들의 상황인식을 반영한 것이라면 그들에게 다시 한번 현장을 꼼꼼히 점검하도록 엄하게 지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제직필]부동산 문제,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

서울과 수도권의 상황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은 ‘일부 지역’으로 치부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2018년 9·13대책 이후 내려가던 서울의 집값이 올 6월경부터 반등을 시작하더니 11월6일 정부가 분양가상한제 실시를 발표했음에도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의 집값은 2018년 말의 고점을 이미 회복하였고 무주택 실수요자들은 현재 좌불안석입니다. 김의겸과 조국으로 인해 실망한 많은 촛불시민들이 ‘이 정부에서 더 이상 집값 희망고문을 당하기 싫다’며 격한 분노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가격상승은 서울의 ‘일부’ 고가 아파트에 국한된 문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의 가격상승으로 서울지역 아파트의 50% 이상이 이미 고가 아파트가 되어 버렸습니다. KB국민은행의 집계에 의하면 지난 9월 현재 서울아파트의 중위가격 평균은 이미 8억7000만원을 넘었고 아마도 현재는 9억원을 넘었으리라 추측됩니다. 2017년 4월 6억원이던 중위가격이 2년 반 만에 3억원 인상된 것인데 이는 매달 1000만원을 저축해야 마련할 수 있는 돈입니다. 상위 5%의 소득자도 할 수 없는 저축입니다. 반면 4억5000만원에 강북의 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은 입주 후 1년 만에 7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린 경우도 있습니다.

정부 출범 초기 장하성 정책실장이 “모두가 다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실언을 하여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대다수 서민들은 강남을 ‘감히’ 넘보지 않습니다. 서민들에게 강남은 이미 ‘그들만의 캐슬’이 된 지 오래입니다. 서민들은 강북과 경기도의 적당한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은데 이미 이곳의 많은 지역도 서민들에게는 점점 ‘넘사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은 영화 <설국열차>에서처럼 점점 ‘거주지 계급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책담당자들이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지역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강남이 아니라 서민들의 보금자리인 강북과 경기도입니다. 지금 많은 지역에서 매도자들이 추가적인 가격 인상과 계약파기를 수시로 요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인터넷에 공개된 가격을 보고 집을 계약하러 갈 때마다 추가적인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매도자들 때문에 발길을 6차례나 돌려야 했던 신혼부부의 모습이 연상되십니까? 지금 서민들은 ‘집을 처음 공고한 대로 팔아주면 고마운 매도자’라는 말까지 하고 있습니다.

보수언론과 시장주의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규제 때문에 역설적으로 집값이 계속 오른다고 주장하지만 모두가 사실인 것은 아닙니다. 2014년 말 이후 계속 상승 중인 아파트값은 보수정부의 지속적인 부동산 규제완화와 대출규제 완화, 그리고 계속되는 저금리로 갈 곳 없는 시중의 유동자금에 의한 갭투자 등이 주원인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안일하면서 일관적이지 않은 대응은 타고 있는 장작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2018년의 9·13대책 이후에 8개월 정도 집값이 약간 내려갔을 뿐 대부분의 정책들은 효과가 전혀 없었습니다.

보유세와 관련하여 문재인 정부는 세율인상에도 소극적이었을 뿐 아니라 공시가격 현실화에도 소극적이었습니다. 가격 안정화가 우선임에도 불구하고 임대주택등록을 늘려야 한다는 한 청와대 참모의 ‘소신’ 때문에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물량도 시장에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주택 실수요자에게까지 대출을 제한함으로써 정부는 거래절벽을 만들었고 일부 현금동원력이 뛰어난 사람들만 알짜배기를 ‘줍줍’하도록 해 버렸습니다. ‘거래절벽’이 발생하면 거래량이 없기 때문에 가격이 급등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착시일 뿐입니다. 분양가상한제는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포괄적으로 시행할 때에만 집값을 안정화시키는데 몇몇 지역에 대해서만 핀셋지정하다 보니 지정지역뿐 아니라 다른 많은 지역에서도 가격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정책은 타이밍도 매우 중요합니다. 일정기간 사태를 관망하는 잠재적 매수자들도 가격 상승이나 하락이 일정한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면 급속히 한쪽으로 쏠리게 됩니다. 그래서 연말이나 늦어도 내년 1월까지 가격 하락이 대세라는 신호를 시장에 강력히 보내지 않으면 이후에는 백약이 무효일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일관되고 단호한 정책을 적시에 펴면 부동산시장은 결코 정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시장이 정부를 이기는 경우는 정부가 일관성도 없고 단호하지도 않은 정책을 펼 때입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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