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찢기 잘하는 방법

2019.12.23 20:51

운동을 열심히 하는 후배가 새해 소원이 ‘다리 일자찢기’라며 요령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다리를 180도 양옆이나 앞뒤로 펴는 스트레칭은 자기 관절을 자유자재로 쓰는 무술인이나 무용가처럼 멋있어 보이는 데다 꾸준히 하면 코어근육이 단단해지고 오장육부 순환이 원활해지는 건강상 이점도 있다. 하지만 속성으로 익힐 요령이랄 만한 게 별로 없으니 해준 말이라곤 이것뿐이었다. “그냥 하면 돼.”

[기자칼럼]일자찢기 잘하는 방법

취미로 발레를 5년간 배우면서 숱한 회원들의 다리찢기를 봐왔지만 늘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유연성을 타고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생님이 등을 눌러 배를 바닥에 붙이는 순간 ‘악!’ 하며 비명이 터진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이의 낯빛은 마치 치과의자에 누워 이가 뽑히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두려움으로 그늘진다. 대뇌변연계의 편도체에서 이러다 곧 죽을 것 같다는 비이성적인 공포 신호를 내보내는 데 따른 것이다.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해 몸은 일단 방어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므로 내 몸의 ‘구조개혁’에 앞서 몸을 잘 설득할 필요가 있다.

먼저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가벼운 운동으로 체온을 적당히 올린 뒤 마지막에 일자찢기를 하는 게 좋다. ‘일자찢기’는 스트레칭이지 진짜 찢는 게 아니다. 몸의 상태를 무시한 채 무작정했다가는 진짜로 근육과 인대가 화끈하게 찢어지는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생초보’ 딱지를 뗀 3년차 때 그러다 다쳐서 한동안 정형외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앞서간 의욕이 느린 몸을 기다려주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마사지도 도움이 된다. 폼롤러로 자가 마사지를 하면 굳어진 근막이 이완되면서 평소보다 스트레칭이 더 잘된다. 몸의 운동기능을 향상시키려면 무작정 운동을 거듭하기보다는 가끔 몸과 대화하는 느낌으로 풀어주는 게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다리찢기의 ‘공포’가 실제 고통에 비해 두려움으로 부풀려졌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포를 느끼면 긴장하게 되는데, 이 경우 근육이 더 경직되면서 고집스러워진다. 힘이 잔뜩 들어간 근육이 늘어날 리는 만무하다. 이때는 “지금 스트레칭 ‘당하고 있다’고 수동태로 생각하지 말고 내 다리가 ‘늘어난다’고 능동태로 생각하라”는 조언을 최근 들었다. 힘을 가해 근육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이 ‘위기’를 이용해 내 근육이 스스로 늘어난다고 사고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 봤더니 정말 신기할 정도로 통증이 참을 만한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몸도 더 잘 풀렸다.

내 몸 하나 ‘구조개혁’ 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여러 주체들이 모인 한 사회라는 커다란 단위에서 이게 쉬울 리 만무하다. 전 세계적으로 낮은 금리가 이어지면서 경제가 저금리에 중독됐다는 지적이 최근 이어지고 있다. 구조개혁이 지연되면서 새로운 동력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근 만난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다 생물이라서 그런 거죠. 살아 있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고통을 회피하니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구조개혁은 인기 있을 리가 만무한 터라 내년 정부의 경제방향에서도 ‘5대 부문 구조개혁 20대 과제’ 정도로 모호하게 걸치고 넘어갔다. ‘스트레칭은 중요하니까 앞으로 꼭 할 계획이다’ 수준의 의례적 문구다. 정치적인 의지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은 한국 경제가 저출산·고령화에 성장동력 상실로 ‘일본화’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재정확대와 동시에 반드시 구조개혁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아무래도 고통이 싫으니 회피하는 인상이 든다.

하지만 일자찢기에 별 요령이 없는 것처럼 구조개혁도 사회 구성원들과 소통과 합의를 통한 능동적인 추진 말고는 꼼수로 돌아갈 방법은 달리 없다. 그리고 다리를 한 번에 찢으려면 정말 말도 못하게 아프다. 그때쯤 후회할지도 모른다. 미리미리 스트레칭 좀 해둘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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