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가 꼭 필요해?

2019.12.25 20:45 입력 2019.12.25 20:52 수정

지난해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자전거 축제에 참가했다. 강남 법원 앞까지 도로를 달리고 돌아와 잠수교 남단에서 끝이 났다. 그리고 광화문까지는 혼자 알아서 돌아왔다. 한강을 끼고 오다가 마포에서 인도 옆 자전거길로 가는데 문득 도로에 분명히 찍힌 표지글이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 우선통행.’

[기자칼럼]전기차가 꼭 필요해?

내심 불안했지만 그래도 가쪽 차선에 버젓이 그어진 교통표지를 믿고 차도로 내려가봤다. 마포사거리를 앞두고 한 화물차가 거의 왼쪽 핸들이 닿을 듯 바짝 밀어붙였다.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아찔했다. 위협운전이다. 운전자는 ‘왜 자전거가 도로에 내려와 교통흐름을 방해하냐’고 생각했겠지만. 그러나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엄연히 인도가 아닌 도로를 달려야 하는 차다. ‘자전차.’

겁은 났지만 좀 더 가보기로 한다. 아현삼거리를 지나 서대문으로 직진하는 상황. 충정로사거리 앞에서 맨 오른쪽 차선은 서소문행 우회전 길로 바뀐다. 경향신문 쪽으로 직진하려면 한 차선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순간 버스가 옆으로 치고 나오며 가로막았다. 버스를 지나보내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뒤에서 승용차들도 비켜줄 기미 없이 막 달려온다. 결국 갓길에 한참 선 뒤 신호가 바뀐 뒤에야 겨우 차선을 바꿨다.

이런 서울의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게 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행정’으로 보였다. 일단 도로 바닥에 표시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운전자들은 그 길이 자전거 우선인지 모르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칼치기’가 버젓이 일어난다.

대안은 뭘까. 차선의 절반만큼 아예 선을 긋고 선명한 색깔로 칠해 자전거로를 만들거나, 적어도 우선통행이란 표시를 분명히 해놔야 한다. 북서울숲이나 청계천 옆 일부 구간에 이렇게 돼 있다. 청계천에서 직접 달려보니 꽤 편하고 안전했다. 막히는 차보다 빨리 가기도 했다. 충정로사거리처럼 갈림길 때문에 안쪽으로 갈아타야 하는 곳에도 안내선을 분명히 그어주면 좋겠다.

출퇴근 때 시내 곳곳은 거대한 주차장 같다. 당장 대안은 차로를 넓히거나 우회로를 뚫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상 불가능하거나 지역 민원, 환경 문제로 쉽잖다. 사실 해법은 따로 있다. 차로 하나를 떼서 자전거 전용길로 내주면 된다. 우리도 자전거 출퇴근 인구를 대폭 늘려야 한다. 디젤차나 가솔린직분사(GDI) 차량의 미세먼지, 더 문제라는 브레이크 패드 마모나 타이어 분진 등을 탓하기 전에 자전거 통행부터 보장해주자.

출퇴근 차량에 대개 몇 명이 타고 있는지부터 보라. 한국교통연구원의 2016년 통행량 자료에 나온다. 나홀로 차량이 82.5%나 된다. 그러면서 찻길을 더 만들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이것들이 교통혼잡과 오염의 주범이다. 혼자 10~20㎞ 정도 출퇴근하려고 그 큰 쇳덩어리로 온갖 매연을 뿜어댄다.

지난해 5월 기획취재차 가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아예 도로 한중간 절반 이상에 나무를 심어 공원처럼 해놓고 양옆에 자전거길을 냈다. 덴마크 취재를 다녀온 경향신문 기자는 시내 교통의 60% 이상을 자전거가 분담한다고 전했다.

사실 편도 20㎞ 정도는 자전거를 타거나 전기보드 같은 수단을 이용하면 된다. 미세먼지 타령을 하며 전기차를 강조하는 것도 좀 못마땅하다. 솔직히 시내용으로 전기차가 왜 필요한가. 그냥 전기자전거나 전기보드만으로 너끈하다.

지금처럼 어중간하게 만든 자전거길에는 불편과 위험이 따른다. 운전자도 짜증나는 법이다. 서울시내 주요 도로부터 갓길에 자전거길을 따로 내보자. 서울시가 이런 준비를 한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는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 저마다 적당한 불편과 수고를 감내해야 비로소 변화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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