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생의 소중한 꿈

2020.02.11 20:59 입력 2020.02.11 21:00 수정

겨울의 끝이 보인다. 세상이 어수선해도 계절은 바뀔 것이다. 봄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아래에서도 움트고 있어 어느 날 아침 창밖을 내다보면 앙상한 가지만 남았던 나무에 나무눈이 파릇할 것이다. 이렇게 일 년 내내 몸은 움직이지 않고 방구석에 앉아 보일러 온도만 올리고 내리는 나 같은 사람은 계절을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듯 얘기한다. 봄은 잎이 돋고, 여름은 우거지고, 가을은 낙엽이 구르고, 겨울은 잿빛이고…. 식상한 말로 계절을 맞이한다.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아르바이트생의 소중한 꿈

그런데 아르바이트 4년 차인 열아홉 살 청년의 계절은 달랐다. 그는 계절을 아르바이트 업종으로 구분한다. “사시사철 좋은 건 편의점이에요. 여름에는 배 봉지 씌우기, 겨울에는 택배 상하차 일이 하기 좋은데 힘들긴 진짜 힘들죠.”

배 봉지 씌우기는 100장에 5000원을 받는다는 말에 도대체 몇 장을 씌워야 돈벌이가 되는지 가늠하느라 내가 손가락을 꼽아대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하루에 3500장 정도를 한다고. 비탈진 바닥에 사다리를 세우고 그 위에 올라가 온종일 한 알 한 알 봉지를 씌우다 보면 여름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고. 그런데 그나마 그 일은 낫다고 했다.

“겨울에는 배를 골라 분류하는데, 남자는 배 상자를 날라야 해서 힘은 힘대로 들고 알바비는 적어요. 그걸 하는 것보다는 상하차 일이 낫죠.”

중학교 때 태권도를 시작해 큰 대회에 나가 제법 상도 많이 탄 그는 훈련이 없는 야간이나 주말에 틈틈이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허리를 다쳐 일하기 어려운 아버지 용돈까지 챙겨드린다. 그는 태권도 국가대표가 되는 게 꿈이라면서 일 년 동안 열심히 일해 대학교 학비를 모아야 한다고 했다.

“봄에는 고깃집하고 카페에서 일하려고 며칠 전에 면접을 봤어요.”

그의 사계절에는 다 계획이 있었다. 움튼 꿈을 벼린 긴 시간은 헛되지 않아 겨울을 뚫고 어김없이 봄이 오듯 그도 찬란한 봄을 맞을 것이다.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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