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Z’를 다시 떠올린 이유

2020.03.15 20:50 입력 2020.03.15 20:54 수정

<세계대전Z>라는 소설이 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좀비 영화 <월드워Z>의 원작으로 맥스 브룩스의 작품이다. 어느 날 좀비 바이러스가 출현을 하고 세계와 인류가 존재의 운명을 걸고 그 바이러스와 맞서 싸운다는 내용은 소설과 영화가 다를 바 없다. 다만 소설은 영화와 달리 좀 특별한 구성과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서사의 기승전결을 인터뷰로 모두 채웠다는 점이 그렇다.

[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월드워Z’를 다시 떠올린 이유

소설은 바이러스 사태가 모두 종식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어 원작에는 부제 자체가 ‘구전하는 좀비 전쟁의 이야기’로 되어 있기도 하다. 화자는 유엔의 전후조사위원회의 위원으로 좀비 전쟁의 실태 조사가 그 임무인 바, 우리는 ‘인간적인 요소’에 가려지지 않은 분명한 사실과 수치를 원한다는 위원장의 말에 반하여 이렇게 응답한다.

‘하지만 이 인간적인 요소야말로 우리를 과거와 강렬하게 연결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과학적인 분석이나 정치적인 평가, 혹은 통계 자료가 아니라 경험의 기록이 필요한 이유를 역설하는 것이다. 기록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당연히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어쩔 수 없이 그와 유사한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싸워 이기기 위해서이다.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라고 하겠다. 그들은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소설은 구성의 방식으로만 본다면 매우 건조하다. 오직 인터뷰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서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다. 허구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재하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피해의 참상들, 그 와중에 국민이 아니라 자신의 이득만 생각하는 부패한 정권, 기업의 사리사욕….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잃어가는 사람들의 슬픔이 생생해서 더욱 참혹하다.

소설 대신 영화를 관람한 분들이 많으실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저런 일이 가능하겠는가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은 소설 속에서 더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현재의 상황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물론 현재의 상황을 좀비 바이러스의 출현과 비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하지만 동시에 과장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처음 겪는 세계적 재난이든
개인적으로 겪는 고난이든
역경은 모두 교훈을 남긴다

그러니까, 이런 때. 아침마다 재난 문자 알람으로 눈을 뜨고, 확진자 수를 파악하기 위해 수도 없이 클릭을 하고,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 다니고…. 가족은 재택근무를 하고, 지인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무섭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사스를 직접 겪어봤음에도 그렇다.

사스가 창궐하던 시기에 나는 중국에서 살고 있었고, 내가 살던 도시가 폐쇄되는 것을 겪었다. 기숙사가 있는 현지 중학교를 다니던 아이는 통학이 금지되고 학생 모두가 기숙사에 수용되었다. 가족 간의 면회도 되지 않았다.

그런 무서운 경험을 겪어보았음에도 이 상황이 익숙지는 않다. 또 새삼스럽고 또 무섭다. 물론 코로나19는 극복하게 될 것이다. 희망을 갖고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미래에는 더 강한 바이러스가 올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예측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세계대전Z>를 다시 떠올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재난이든, 개인적인 고난이든 역경은 교훈을 남긴다. 그래야만 한다. 상처는 흉터를 남기기도 하지만 치유의 과정을 통해 더 굳은 살로 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상처는 흉터가 되기도 하지만
치유를 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더 굳은 살로 변하기도 한다

그나저나 이런 상황에서 난생처음의 일도 해봤다. 뉴스에 달린 댓글에 신고를 눌렀다. 댓글을 잘 읽지도 않거니와 ‘좋아요’ ‘싫어요’도 눌러본 적이 없다보니 신고 클릭을 해놓고 혹시 경찰에서 전화가 걸려오나 한동안 기다려보기까지 했다. 왜 신고했냐고 물어보면 할 말은 분명했다. 이런 때일수록 그래서는 안 된다고 믿어지는 악의, 특정 나라나 지역에 대한 끔찍한 폄하, 무책임한 선동, 형편없고 근거 없는 비난, 인간이 인간을 무서워하게 만드는 말들. 아니다. 그건 인간의 말이 아니라 익명의 말이라는 것을 안다. 익명 속에 숨은 치기와 무책임과 비겁함의 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용인되면, 무시되면, 그것 또한 바이러스다. 무섭게 전염되고, 누군가는 심하게 다치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는다. 그래서 자꾸 ‘싫어요’를 누른다. ‘싫어요’를 연속해서 클릭하면 그게 두번 세번 싫은 게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자꾸 누른다. 바이러스가 무서운 만큼 건강한 마음,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이 소중해서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