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을 수학적으로 보면

2020.03.16 20:43 입력 2020.03.16 20:47 수정

세상에는 현실에서 실험해볼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인류가 어떻게 삶의 방식을 바꾸면 기후변화를 저지할 수 있는지를 인류의 운명을 걸고 실험해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런 문제엔 수리(數理) 모델링을 사용한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는 요소 간의 관계를 수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수식 속의 일부 요소는 인간이 바꿀 수 있어서, 특정 요소가 기후에 주는 영향을 실험해 볼 수 있다. 현재 인류가 추진하고 있는 저탄소 정책 등은 이런 방식으로 효과성이 검증된 정책이다.

[세상읽기]감염병을 수학적으로 보면

감염병은 어떨까. 감염의 시작과 번져간 흔적은 빅데이터에 표현되고, 사후에 수학적 방식의 모델링으로 작동했던 방식을 드러낸다. 일단 수식이 생기면, 그 안에 포함된 일부 요소를 바꿔보는 방식으로, 정책적 대응이 감염 확산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실험해볼 수 있다.

근대 역사에서 인류 최대의 재앙은 약 100년 전의 스페인 독감이다. 2년 동안 지구상에서 35명 중 1명이 사라졌다. 특히 심한 피해를 본 이란은 인구 5명 중 1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에서는 무오년 독감으로 불리며 14만명의 사망자를 냈다. 당시 사망자 대부분이 청년층에서 발생했지만, 이번 코로나19의 사망자는 주로 노년층이다. 이전의 경험이 다음에도 적용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뜻이다.

감염병을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시도는 17세기 페스트 대응에서 실마리가 보이지만, 18세기 스위스 수학자인 다니엘 베르누이가 천연두의 확산을 수식으로 표현한 게 본격적인 시작이다. 그의 수학 실험은 대규모의 예방 접종이 인류의 기대수명을 3년 늘린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현대의 수리감염역학(mathematical epidemiology) 연구자들은 감염병의 확산 과정을 미분방정식이나 차분방정식으로 표현하고 컴퓨터를 사용해서 수치적으로 푼다.

이와는 다른 네트워크 이론의 접근도 있다. 할리우드의 배우들을 무작위로 분포된 점들로 표현하고, 서로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 선을 긋는 걸 연상해보자. 수많은 점과 선이 있는 사회관계망에서, 선이 별로 없는 건 외톨이이고, 많은 사람과 이어진 건 ‘마당발’이다. 만약 많은 점 사이에 제멋대로(random) 선을 그으면 반드시 몇 개의 마당발이 나온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사실이다. 상호 연결된 인터넷 접속지들의 네트워크에서도 이런 마당발 허브가 여럿 생기는데, 해커가 이런 허브를 공격하면 전체 인터넷의 심대한 접속 장애가 발생한다. 이번에 우리나라 코로나19의 확산을 점과 선으로 표현한다면, 특정 종교단체나 콜센터 등이 이런 ‘마당발’의 역할로 등장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은옥 건국대 수학과 교수팀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 개념까지 반영한 코로나19 수리모델링을 최근에 시도했다. 전통적인 SIR 방식에서는 31번째 확진자 발생 이후 급속도로 확진자가 증가해서 전 인구가 감염될 때까지 확산한다. 6개의 미분방정식으로 구성된 새 모델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실행되면 일부 감염으로 끝난다. 행동 변화로 인해 감염전파율이 2%로 줄어들고, 증상발현 후 격리까지 평균 4일 걸리는 경우는 6월 중순에, 격리에 하루 더 걸린다면 10월 말에 종식된다. 3월14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사의 훨씬 단순한 무작위성 실험도, 지역 격리는 전체 감염을 늦추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일부 감염만으로 종식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사회문화적 요소를 모두 수식에 반영하기 힘들고 각종 상수 값은 기존 데이터로 추정한 것이라서 종료 시점의 예측 용도로 사용하긴 힘들다. 하지만 수학적 실험이 의미하는 대응 정책은 분명하다. 혹독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행하고, 증상발현 후 최대한 신속히 격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격리에서 하루를 단축하면, 코로나19 종식은 넉 달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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