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적 교육공동체’를 만들어라

2020.03.22 20:41 입력 2020.03.23 09:41 수정

학교 안 가서 마냥 좋다던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다. 학교를 안 간 지 3개월이 되어간다. 아침에 몰려오고 오후에 헤어지는 친구들, 넓은 운동장과 실내 체육관, 말끔하게 새로 꾸민 교실과 도서관, 맛있는 밥이 나오는 급식실과 리듬 있게 돌아가는 하루, 그리고 선생님이 살짝 그리운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들이 21세기 아이들을 키운다”고 했는데 지금 학교 환경은 매우 좋아졌고 평온해 보인다. 교육부 장관은 지난 6일 ‘포용국가 실현을 위한 사회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개학 추가 연기 기간 중에도 꼼꼼하고 촘촘하게 아이들을 챙기겠다고 했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치료제와 백신이 나오기까지 시간은 꽤 걸릴 것이다. 상황 변화로 갈팡질팡하지 않을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조한혜정의 마을에서]‘자급자족적 교육공동체’를 만들어라

길게 내다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그간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제대로 된 방향을 찾아가는 최적의 시간이다. 나는 우선 이번 휴교 상황을 이용해서 학기제 변경을 제안한다. 그간 가을학기제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다. 전 세계 70% 국가가 택하고 있는 가을학기제는 글로벌 시대에 교류, 특히 온라인 수업을 하려면 꼭 필요한 제도 개선이다. 가을학기제로 바꾸고 수업시수를 줄이는 특단의 조치를 시작으로 교육개혁을 단행해보자. 지금 학교는 공부 잘하는 소수 학생들을 키우면서 입시 공부에 관심이 없는 다수 청소년들을 안전하게 데리고 있는 보호 관리 기관으로 최적화되어 있다. 그래서 변화가 어렵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가만히 있어주면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놀고 점심을 먹을 수 있다. 학교 끝나면 남은 시간은 학원을 가고 그 외 시간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마음껏 논다. 이런 리듬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실은 학교를 가지 않으면 스마트폰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우리는 수차례 기존 직장들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말해왔다. 지금 자라는 아이들 대부분 평생직장을 다니지 않을 것이고, 다니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풀면서 창업을 하거나 직업을 만들어갈 것이다. 재난이 닥쳐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익히며 다양한 실험을 즐기며 살아갈 것이다. 올해가 그런 전환의 첫해가 되게 하자. 스마트폰과 함께하며 자란 아이들은 일찍이 자기 우주를 가지게 된다. 그 우주를 도피처로 삼기보다 생산적인 작업장으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분명히 할 것은 하나. 재난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고 문제 상황을 풀어가는 것이 자신들의 몫임을 분명히 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생명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존재로의 인식을 갖게 될 때 이들은 재난 시대에 삶의 중심을 잡게 될 것이다.

코로나가 부른 교육 공백 사태를
시스템과 정책 전환의 기회로
가을학기제·수업시수 축소 개혁
북카페·동네부엌·근처 농장도
모두가 아이들에겐 배움의 장
학교는 시대 공부의 플랫폼 돼야

다행히 지역사회에는 이미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을 하는 청년들, 시대를 성찰하기 시작한 청년들로 넘쳐난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아이들의 순발력을 키워줄 청년,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한 동네 연극쟁이, 기후위기 워크숍을 마련한 동네 북카페, 감자와 고구마와 무를 심고 기르고 요리해 먹으며 생명의 소중함과 밭일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농장 캠프와 동네 부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꾸준히 아카이빙하면서 개인과 마을의 성장을 느끼게 도와주는 동네 방송국, 동사무소, 예술적인 감수성을 키워 줄 미술과 음악의 집, 동네 미장원과 닭튀김집, 모두가 아이들에게는 배움과 만남의 장이 될 수 있다. 동네를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청년과 세계 방방곡곡을 다닌 청년들이 만나 학교를 중심으로 아이들과 탁월한 작업을 한다면, ‘안 버림 연구소’를 통해 마을 쓰레기를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래서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낸다면 이들은 자부심이 찬 청년들로 자랄 것이다.

한때 나는 학교가 없어져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의 ‘평온한’ 학교를 떠올리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만 이제 시작해야 한다. 학교는 재난의 시대에 마을 주민들의 대피소이자 아이들과 함께 주민들이 시대 공부를 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어린이와 청년과 교사와 부모와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자급자족적 교육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역병의 시대도 지혜롭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국가를 개조할 이 특단의 작업이다. 무엇보다 이 교육혁신 정책은 경제 부흥을 해낼 탁월한 경기 부양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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