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를 위한 착한 정책

‘월요병’이 도지는 일요일 자정, 침대에 누우면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 누구보다 빨리, 이미 내일의 출근을 해버린 사람들의 소리가 조용한 골목길을 덮는다. 대형 트럭의 하차 소리, 짐을 옮기는 소리, 합을 맞추기 위해 기합을 넣는 소리 말이다. 청소노동자가 야밤에 우리의 쓰레기를 치운다. 다음날 출근할 때에는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가 말끔히 치워져 있다. 당신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녹색세상]청소노동자를 위한 착한 정책

작년 말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카판노리에 다녀왔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다른 어디에도 소각장은 안 된다는 마음으로 20년 전 ‘쓰레기 제로 마을’로 전환한 곳이다. 우유를 자기 용기에 리필하는 우유 ATM, 1년 동안 배출한 쓰레기양을 기록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드는 ‘쓰레기 제로 가족’ 프로그램, 천 기저귀에 붙는 지자체 보조금, 한 장에 만원이나 하는 종량제 봉투…. 유럽 최초의 쓰레기 제로 마을인 카판노리시는 재활용률 90% 이상을 달성하며 소각장을 짓지 않고도 쓰레기 문제를 해결한 선례를 보여준다.

그런데 어떤 정책이 가장 인상적이냐는 질문에 의외의 장면이 떠올랐다. ‘밀라노 패션’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유유히 돌아다니던 청소 트럭과 아담한 쓰레기 봉투였다. 청소차는 햇빛에 반짝였고 쓰레기봉투는 적당해 보였다. 이탈리아엔 70ℓ가 넘는 쓰레기봉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서울 마포구엔 종종 터질 듯한 100ℓ짜리 쓰레기봉투가 놓여 있다. 자기 몸통보다 큰 봉투를 들어 올리느라 청소노동자의 몸엔 요추염좌, 추간판탈출증 등이 찾아든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마포구 청소노동자 혼자 하루에 3t이 넘는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이는 5분에 쌀 한 가마니(80㎏)를 들어 올리는 양이다. 게다가 야간노동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2급 발암요인이다. 국내 청소노동자의 야간노동 비율은 62%다. 깜깜한 밤 청소차 뒤편에서 청소노동자가 떨어지고 깔리고 뭉개진다. 공공 노동 가운데 가장 위험한 업종이 바로 청소업이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닥치는 어업이나 임업보다 오히려 청소업에서 다치는 노동자 비율이 더 높다.

작년에 환경부는 ‘환경미화원 작업안전지침’을 통해 변화를 도모했지만, 청소업무는 지자체 소관이라 속도가 더디다. 지난 5월1일 노동절에 뜻 맞는 사람들끼리 자기가 사는 곳 지자체에 민원을 넣었다. 청소일 낮에 하면 안 돼요? 광주는 100ℓ 종량제 봉투를 금지했는데 우리는요? 그 결과 서울 서대문구는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남겼고 경기 성남시는 주간에 시범운영 중인 청소차 사진을 보내왔다. 생애 첫 민원에 답을 받아 감개무량하다는 반응, 민원은 못 넣었지만 쓰레기봉투에 감사 문구를 써서 내놓은 사연, 관리인께 고구마를 구워드린 이야기가 넘실댔다.

다정한 사람들의 힘으로 다정한 제도를 만들면 좋겠다. 계산대 노동자를 위한 의자 캠페인 청소노동자를 위한 샤워실 설치 국민청원, 쓰레기봉투 크기를 제한하자는 주민의 목소리. 힘없는 사람들의 쫀쫀한 연대가 퍽퍽한 현실을 바꿔낼 수 있다. 존 버거의 말처럼 천국에는 연대가 필요 없어요, 연대는 지옥에서나 필요할 뿐. 100ℓ 봉투를 금지한 지자체는 광주 광산구와 동구, 부산 해운대구, 경기 성남·용인·고양·부천시다. 당신은 어디 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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