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과 ‘나의 시대’를 보낸다

2020.07.27 03:00 입력 2020.07.27 03:04 수정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7월10일 이후 그가 남긴 길 위에서 무던히도 헤맸다. 인권 서울시장에서 성추행 가해자로 추락한 기막힌 모순. 박원순의 상징적 가치를 스스로 배반한 ‘박원순의 역설’. 슬프고 아팠지만, 내 슬픔과 아픔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정치의 절반을 잃은 것 같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진보의 절반을 잃은 것 같았던 노회찬 전 의원과 달리 마음을 다해 애도할 수가 없었다.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이 이렇게도 먼 거리였던가.

구혜영 정치부장

구혜영 정치부장

촛불시민들은 세 번의 서울시장 선거를 거치며 ‘박원순이 시장인 서울 하늘 아래서 살고 있다’는 말을 주고받곤 했다. 그가 열고, 우리가 만들었던 ‘시민’ 사회는 유통기한이 한참 남았다는 자부심으로 이해했다. 그러니 그가 성추행 가해자였고, 사회적 약자의 노동권을 무시했다는 걸 인정한다는 건 내가 디디고 선 발판이 빙하처럼 녹아 없어지는 두려움이자 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충격이었다. 내적 망명 이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그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나가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내가 촛불집회 배후로 몰리고 있는데, 얼굴이 드러나면 시민사회 탄압에 빌미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직감은 적중했다.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 가게는 기업과의 각종 프로젝트가 거의 끊겼다. 후원기업까지 사찰당했다. 그는 당시 “촛불을 들 게 아니라 탄핵했어야 했다”고 분노했다. 2016년 겨울, 촛불집회를 위해 서울광장을 열었던 건 오래 다진 결심이었다. 그는 민주화운동의 알맹이를 86그룹에 건넸고, 민주화운동 이후 1990년대를 시민사회로 만든 건설자였고 그 동력으로 서울시장에 올랐다. 촛불집회는 시민혁명으로 불렸고, 시민사회는 여전히 새 시대를 의미했다. 그런 만큼 박원순을 내포한 시대가 낡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가장 낡은 이유로 세상과 단절했다. 유서 한 귀퉁이에 피해자를 향한 사죄 한마디 없이 ‘모두 안녕’이라고 했다. 그의 모순이 얼마나 극명하게 존재해왔는지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버거운데 ‘납작한’ 가해자가 돼버린 것이다.

그의 죽음 뒤에 흐르고 있는 역류는 더 큰 충격이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가관이다. 피해자는 첫 기자회견에서 피해를 입은 사실, 두번째 회견에서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 발생할 수 있는 업무환경을 고발했다. 기자회견 이후 ‘저게 무슨 성폭력이고 성추행이야’ ‘더 적나라한 피해를 내놔 봐’라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1993년 국내 첫 성희롱 사건(법적으로 제기된)의 변호인이었던 그는 ‘피해자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해선 안 되고, 피해자가 되는 건 피해자 탓이 아니어야 한다’는 피해자 중심주의 기초를 세웠다. 그가 만든 세상은 딱 27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변호인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공격한다. 변호인의 정치 이력을 왜 이 문제에 끌어들이나. ‘우리 편’이 보기엔 내키지 않아도 성폭력 사건을 잘 끌어왔기 때문에 피해자는 그 변호인을 선택한 것이다. 변호인이 ‘우리 편’ 아니라고 정치적 음모를 주장하는 것은 피해자를 돕지 않겠다는 핑계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진보정당 젊은 여성 의원들의 조문 거부 논란도 불편하게 지켜봤다. ‘신념을 관철하려고 정치하냐, 그게 정치적 메시지냐’ 정도면 될 것을, 꼭 ‘싸가지’ ‘예의’로 되받아야 했을까. 여성들이 과격하고 거친 언어를 쓰는 이유는 “창문을 깨고 불을 질러야 (남성들이, 세상이) 알아듣기 때문”(서프러제트)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젠더 이슈를 정치 영역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도덕 문제로 접근하는 정치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XX 자식’, 여당의 ‘피해 호소인’ 발언은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그도, 그를 상징했던 세상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마지막과 시작이 충돌하는 곳에선 굉음이 터져나오게 마련이다. 민주화운동 세대는 경찰서를 점거하고, 보도블록을 깨고, 화염병을 던지며 군부독재에 맞섰다. 그 돌과 화염병은 낡은 시대를 보내는 굉음이자 새 시대의 신호였다.

지금 피해자의 절규가, 거악과 싸운 영웅신화가 한 인간의 존엄성을 앞서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새 시대의 첫 신호일 테다. 나는 그의 죽음 이후 고통스러웠던 내적 망명에서 벗어나려 한다. 아직 상실과 분노가 뒤엉킨 수많은 망명객들도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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