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은 다를까

2020.08.03 03:00 입력 2020.08.03 10:32 수정

얼마 전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접했다. 갤럽의 최근 조사에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135개국에서 시민 1000명씩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3%였다. 1위 독일(44%)에 이어 2위였지만, 국제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중국(32%), 러시아(30%)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냉전체제 붕괴 후 세계경찰 역할을 한 미국의 위상추락이 확인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악마화하고 있지만, 미국이나 중국의 위상 차이는 없었다.

이용욱 국제부장

이용욱 국제부장

언론들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벗어났으며, 이란 핵합의(JCPOA)도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중국 편향적이라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발을 뺐다. 각국 정상들과의 회담에선 막무가내 태도를 보인다. 지난해 12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나토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비정상적 태도를 뒷담화하는 동영상까지 공개됐을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안보 문제도 손익계산에 기초해 풀려 한다. 동맹들과 ‘방위비 분담금’의 전쟁을 벌이는 게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호구가 아니다”라며 주독미군의 3분의 1을 줄이겠다고 했으며, 한국을 향해서도 주한미군 감축설을 흘리면서 방위비 대폭 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동맹과 우방들을 당황하게 했고, 독선적 외교는 미국의 국제지위에 타격을 줬다. 트럼프의 미국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황망한 시각이 갤럽 여론조사에 반영됐을 터이다. 게다가 코로나19 대응 실패로도 미국의 얼굴은 구겨졌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는 내심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당선을 바랄 것이다. 실제 바이든 전 부통령은 취임 첫날 파리기후변화 협약 재가입 및 코로나19 대응 관련 새로운 국제 공조를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방위비 분담금 압박에 대해서도 “지나친 증액요구가 동맹 균열을 불러올 수 있다”고 반대한다. 바이든의 안보보좌관 출신인 콜린 칼은 “가까운 동맹들에 ‘우리가 돌아왔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될 어젠다”라고 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달라질까. 물론 점잖은 바이든이 적어도 미국 우선주의를 강요하고 동맹들을 대놓고 돈벌이 대상으로 치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바이든 전 부통령의 대선공약이 될 민주당 정강정책은 바이든 집권 시 트럼프 대통령이 앞세운 ‘미국 우선주의’를 즉각 폐기하고, 추락한 미국의 리더십을 재창조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방위비 대폭 인상 압박을 두고 “동맹국 한국을 갈취하려고 시도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 입장에서 마음 놓을 상황은 아니다. 바이든이 집권한들 트럼프 시절 크게 부각된 미국 리스크가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동맹을 우선시한다지만, 미국 우선주의의 큰 줄기가 달라질까.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한국은 부자국가다. 코로나19 모범국가로 국제사회 위상도 늘었다. 액수가 줄더라도, 한국에 더 부담을 지우려는 미 정부의 큰 흐름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미·중 충돌은 진행형이다. 정상적이고 품격 있는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주석의 ‘대국굴기’에 맞서 ‘아시아로 회귀’ 정책을 추진했다. 한국은 중국에 맞선 한·미·일 삼각동맹을 지속적으로 강요당했다. 고고도방어미사일체계(사드) 배치도 오바마 전 대통령 때 이뤄진 일이다. 미·중 충돌이 더 극심해진 현 상황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라고 다를까. 산업연구원은 최근 ‘2020년 미 대선 전망과 한국의 통상환경에 미칠 영향’ 보고서에서 바이든이 당선되면 한국은 미·중 간 양자택일을 강요받을 것이라고 했다.

위험 요소는 더 있다. 북·미관계다. ‘깜짝쇼’ 비판을 받았지만 두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도발을 어느 정도 억제해왔던 트럼프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무책임하게 임했다는 입장이며, 북핵 협상에서도 실무 조율을 우선하겠다고 했다. 자칫 오바마 전 대통령 때처럼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입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 트럼프가 됐든 바이든이 됐든 한때의 ‘든든한 우방국’ 미국은 없다. 우리는 계속 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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