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대신 편입?

2020.09.24 03:00 입력 2020.09.24 03:04 수정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유난히 수능이 늦다. 올해 수능 지원자는 역대 최소규모로, 40만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졸업생은 13만3000명으로, 전체의 27%를 차지한다. 이런 졸업생 응시자 수는 한동안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숫자는 바로 우리나라 입시시장을 받쳐주는 로열 고객층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대학에 입학했다고 해서 입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올해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가운데 46.5%가 반수나 편입 의향이 있다. 거의 절반의 재학생들이 학교를 옮기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이를 반드시 학벌세탁으로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전공을 바꾸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입학 후 학교를 옮기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재수나 반수를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편입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편입규모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학생 중 30% 정도는 한번쯤 편입 경험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단지 2~3%에 머문다. 그만큼 대학체계의 내부이동은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이동하려면 별수 없이 대학체계 밖의 사교육시장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만일 대학정책을 확 바꿔서 재수보다는 편입이 유리한 입시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즉 사교육시장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공교육체계 내에서 경쟁과 이동이 가능한 고등교육 환경이 구축된다면 입시생태계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그 결과는 중등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조금은 편파적이지만 긍정적 신호만을 몇 가지 모아본다.

첫째, 편입이 공교육체계 경계 밖에 머무는 재수생들을 대학체계 안에서 경쟁하도록 하는 것인 만큼, 재수가 편입으로 대체될 경우 대학 밖으로 내몰렸던 13만 재수생 사교육시장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만큼 대학의 실질적 재학생 수는 늘어나게 된다. 또한 학사편입 정원을 확대할 경우 추가 수요도 발생한다.

둘째, 고인 물과 같던 대학들이 각자 프로그램의 질을 놓고 본격 경쟁하는 양상이 펼쳐진다. 대학들은 매년 신입생 유치와 마찬가지로 편입생 유치경쟁을 벌이게 된다. 편입 정원도 강제배정된다. 매년 편입생 입학비율이 공시되고 유입대학과 유출대학이 공개된다. 학과별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는 셈이다. 어쩌면 이 지표가 신입생 충원율 혹은 취업률 등 보다 더 적나라하게 대학 경쟁력을 보여줄지 모른다.

셋째, 편입은 자퇴나 휴학으로 생긴 빈자리를 채운다는 의미를 넘어 ‘공정입시경쟁’의 한 축이 된다. 미국의 경우 주립대학들은 자기 주의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 출신자 및 타대학으로부터의 편입자를 받는 것을 일종의 공정경쟁 가치로 여긴다. 커뮤니티 칼리지 졸업학점 3.8 이상이면 그 주의 가장 좋은 주립대학에 자동으로 입학할 수 있기도 하다. 주립대학 간 전공별 교육과정을 표준화함으로써 편입 시 학점손실을 최소화하는 장치도 있다.

넷째, 학생 입장에서도 수능준비로 퇴화하는 게 아니라 대학 교양과정을 전진적으로 이수하면서 편입을 준비할 수 있다. 이전 대학의 교양과정 성적이 수능점수보다 대학 적응에 직접적 성공지표가 될 수 있다. 고교 졸업 단계에서의 치열한 문제풀이식 입시경쟁도 조금이나마 완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지금처럼 영어위주 편입선발은 지양되어야 한다.

다섯째,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입시공부에만 매달리며 장래나 적성을 진심으로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던 학생들인 만큼, 일단 대학을 체험하면서 자신의 전공선택을 고민해볼 환경이 만들어진다. 요컨대 대학 1~2학년은 전공을 결정하는 시기가 아니라 그 탐색기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시기의 학생이동은 그리 애써 틀어막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어려운 결정을 대학에 입학하기도 전에 하도록 강요하는 사회가 문제이다. 대학 간 학생이동지수는 어느 정도 높일 필요가 있다.

여섯째, 이것을 ‘지방대 공동화 현상’으로 몰아가기보다는 각 전공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공개 시험하는 지표로 이해해야 한다. 지금껏 학생을 볼모로 학교를 운영했다면 혹은 지금까지 대학정책이 대학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대학정책은 학생의 관점에서 철저하게 해체되고 재해석되어야 한다.

끝으로, 편입 가운데 학사편입은 향후 평생학습시대 혹은 인공지능시대를 맞아 더욱 확대돼야 한다. 문과생들의 이과 편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학부전공과 연계된 전문자격 획득을 위해 특정 학부과정을 다시 이수하려는 수도 늘어난다. 당연히 재직자들의 회귀적 학사편입도 증가하게 된다. 졸업 후 새롭게 생성된 첨단분야를 배우려 다시 대학으로 돌아오고 싶지만, 현재로서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