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단백질도 생물체도 아닌 말 그대로 미물이 인류를 한껏 유린했다. 인간 지식의 대종은 자연을 ‘정복’하는 기술이었는데, 그 결과 깊은 숲속의 동물과 공생하던 바이러스가 인간이라는 새로운 숙주를 만났다. 인체는 수 십만년의 진화 속에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바이러스에 적절한 대응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앞으로 코로나23이나 코로나27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동물 고유 바이러스도 인간을 조우할 것이다. 초미시 수준에서 자연의 복수가 시작됐다.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초거시 수준에서도 자연은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복수의 신호를 보냈다. 1970년대에는 카산드라의 예언쯤으로 치부되던 생태위기를 지금도 의심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다. 작년의 오스트레일리아 들불, 금년 여름과 가을로 이어진 시베리아와 미국의 산불은 앞으로 일어날 어마어마한 재해의 확실한 예고이다. 이제는 78억명에 이르는 인류 모두, 200개가 넘는 나라 모두가 함께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인류는 절멸을 맞을 것이다. 가히 전쟁 상황이다.

지난 7월에 발표된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국민대차대조표에 따르면 2019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순자산은 1경6621.5조원으로 국내총생산 1919조원의 8.7배이다. 2014년에 최초로 집계된 국민순자산은 2012년 말에 1경630.6조원으로 당시 국내총생산(1377.5조원)의 7.7배였다. 7년 만에 우리나라 자산의 가치는 약 60% 증가한 반면 이 기간 동안 소득은 40% 늘어났다. 땀 흘려 일하는 것만으로 잘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피케티의 β값의 근사치인 이 순자산/소득 비율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불평등했던 ‘레미제라블’의 시대(19세기 말)에 약 7.5였다. 부동산 거품이 터지기 직전 일본의 수치는 7에 근접했다. 즉, 한국의 이 수치는 자본주의 사상 최고 수준을 이미 넘어섰으며 또한 아주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반면 자본주의 황금기로 불리는 1945년에서 1975년까지 30년 동안 이 수치는 2.5 정도였다. 불행히도 두 번의 세계전쟁과 대공황을 겪고 나서야 순자산/소득의 비율은 3분의 1로 떨어졌다. 현재 세계의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며 위기 경보가 울린 지도 오래되었다.

지난여름의 상황을 우리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묘사했다. 기후위기는 초국가적인 “이산화탄소 배출과의 전쟁”이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한 불평등 역시 사회 내부의 전쟁을 예고한다. 그뿐만 아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이 눈에 띄게 쇠퇴하고 중국은 공공연히 ‘굴기’하면서 미·중 경제전쟁은 무역에서 기술로 번져가고 있다. 우리는 국내의 불평등, 국가 간의 마찰, 그리고 자연과의 불화라는 전쟁을 동시에 겪어야 한다.

하지만 전쟁의 원인을 알면 대응 전략도 명확해진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극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인류는 절멸한다. 현재의 불평등을 대폭 줄이지 않으면 인구의 재생산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뼈저린 ‘루저’의 삶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불을 보듯 뻔하게 루저가 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해법은 간단하다. 2030년 탄소배출 절반, 2050년 순배출 0을 목표로 삼아서 계획된 수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그때마다 탄소세를 계속 올리면 된다. 2020년 50달러, 2030년 75달러, 2050년 125달러가 현재의 지식으로 계산해 낸 수치다. 지금 정부가 목매고 있는 배출권 거래제도는 가격이 40달러에 이르렀는데도 탄소배출을 전혀 줄이지 못했다. 명확히 실패한 제도다.

만일 현재의 자산가격, 특히 부동산 가격을 2030년까지 반으로 줄여야 아이들에게 희망이 생긴다는 데 합의한다면 그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종부세율을 계속 올리면 된다. 현재의 실효세율 0.22%를 최소한 1%까지 올려야 할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속도와 그로 인한 부작용을 고려해서 세율을 조절해 나가고 정부가 부동산을 사들이는 등 하락 속도를 조절하면 된다.

물론 이 두 세금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세금 없이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전쟁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부작용을 완화할 정책 패키지를 구성해야 한다. 지난 9월29일자 칼럼에 쓴 대로 미·중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단기적으로는 원칙 있는 현실주의를 실천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제3지대를 결성해서 공존의 국제규범을 만들어내야 한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위기, 그리고 지정학적 위기의 실태를 명확히 인식하고 가능한 한 빨리 해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전쟁 상황에 걸맞은 명확한 정책 기조와 이를 밀고 나갈 전환적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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