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방역이 ‘선방’한 이유

2020.11.24 03:00 입력 2020.11.24 13:39 수정

올 한 해 내내 전 세계를 뒤흔든 바이러스의 ‘활동기록’, 각국의 신규 확진자나 사망자의 변화 추이를 살펴본다.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간단한 지표지만 경제성장률도 함께 들여다본다.

 바이러스 관련 지표는 세 가지 유형으로 명확히 구분된다. 첫 번째 미국형은 신규 확진자나 사망률 모두 일정한 비율로 증가했고(1, 2, 3차 파동이라고 부르는 세 번의 낮은 봉우리는 확인되지만) 10만명당 총 사망자가 한국의 약 80배에 이른다. 다음은 유럽형이다. 바이러스는 뚜렷하게 1, 2차 파동을 보이며 10만명당 사망자는 가장 좋은 성과를 보인 핀란드나 노르웨이도 한국의 약 6배다(영국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미국보다도 많다). 중국,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유형은 신규 확진자나 사망자 양쪽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였다. 현재 2차 파동을 맞고 있지만 아직은 의료자원이 붕괴되지 않아서 사망자가 급증하지 않는다. 미국형의 그래프 모습이 수평을 그리는 것은 실제의 봉쇄(lock-down)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경제는 유럽이 최악이어서 각국 성장률은 -10%를 기준으로 넓은 분포를 보인다. 사실상 ‘집단면역’ 가설을 택한 미국과 스웨덴은 -5% 언저리, 동아시아 국가들은 0% 정도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중간 정도의 방역을 꾸준히 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탁월한 성장률을 기록했고, 자유방임에 가까운 미국이 중간 정도의 성적을 거뒀다. 반면 방임과 강력한 봉쇄를 반복한 유럽의 경제는 처참하다.

 이러한 ‘방역 다양성’은 저 유명한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예컨대 가장 강력한 대통령제와 다수대표제를 지닌 동아시아는 비례대표제의 유럽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였다. 경제와 방역을 동시에 고려할 때, 일반 신뢰나 정부에 대한 신뢰라는 면에서 완전히 반대쪽에 있는 미국과 스웨덴이 같은 집단에 속한다. 가장 나은 것으로 평가되는 국가보건체제(NHS)를 지닌 유럽 나라들도 바이러스에 잘 대응하지 못했지만(의료재정의 축소가 결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민간의료보험 체제를 지닌 미국보다는 나았다(단, 영국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비슷하다).

 경제와 방역을 동시에 고려할 때, 미국과 유럽 중 어느 쪽이 나은가는 사망자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그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든 방역과 경제를 합친 점수에서 다른 지역을 압도했다. 이 결과는 흔히 아시아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 즉 전체주의나 민주주의의 결여로 설명할 수 없다. 분명히 프리덤 하우스 등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중국과 싱가포르는 권위주의 국가에 속하지만 한국과 대만은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 지 오래다. 즉 정부의 권위가 만들어냈든, 자발적으로 만들었든 이들 나라의 시민들은 마스크 쓰기 등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한 규칙을 지켰다. 말하자면 모두의 생명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들은 오스트롬의 ‘자치의 원칙’을 제대로 실천한 셈이다.

 이런 성과는 이제 빛이 한참 바랬지만 중국의 경제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지금도 종종 불려 나오는 ‘동아시아의 기적’을 연상케 한다. 국내의 자원을 총동원해서 경제성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한 모델이 방역에서도 힘을 발휘한 것은 아닐까? 반면 대륙형 코포라티즘이든, 앵글로색슨형 시장규율이든 제도가 촘촘해지면서 개인주의가 공동체적 규범을 대체해버린 서방은 지리멸렬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서 대대적인 인기를 끈 샌델 교수는 최근 발간된 <능력의 횡포>에서 “성공을 향한 끝없는 개인 간 경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즉 공동선을 달성하기 위한 공동체적 규범의 붕괴가 미국(과 유럽) 사회의 분열과 포퓰리즘을 초래했으며 미국의 민주당(과 유럽의 사회민주당)도 여기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지난 칼럼(‘전쟁기의 정책’)에서 언급한 기후위기와 불평등위기는 바이러스 위기처럼 모두의 생명과 사회 자체를 위협한다. 두 위기로부터의 탈출이 절체절명의 공동 목표가 되고, 수긍할 만한 정책 수단이 제시된다면, 어쩌면 동아시아 모델은 또 한번 기적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정치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냐에 달려 있다. 특히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기에 끝없이 전술을 보완해야 하는 전쟁에서 민주적 동아시아 모델은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물론 샌델이 지적했듯이, 시장경쟁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여기서 발생한 승패를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 치부하는 정치집단은 실패할 것이다. 공동체 민주주의의 정신을 지닌 정당과 지도자야말로 동아시아적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며, 두 위기 해결에서 모범을 보인다면 우리는 바야흐로 ‘제3지대’를 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미국 민주당을 모델로 삼고 있는 한국의 민주당은 지금, 아직 그 힘을 보여주고 있는 우리의 공동체정신마저 해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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