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3법’이 담아낼 것들

2020.11.02 03:00 입력 2020.11.02 03:01 수정

택배노동자들의 잇따른 사망뉴스를 듣는다. 일정한 시간(주 52시간) 이상 근무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은 개인사업자 신분인 택배기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택배노동자 사망 건으로 ‘필수노동’이라는 개념이 부각되고 대책을 모색 중이다. 8월26일 민주노총은 국민동의 청원을 통해 노동환경 변화를 반영하는 ‘전태일 3법’을 발의했고 이 법안은 10만명 이상 동의를 받아내 국회에 회부된 상태다. 특수고용, 간접고용, 플랫폼 고용 노동자들도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자는 것인데 입법 촉구 1인 시위가 노동자, 국회의원, 시민들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11월13일은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되는 기일이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분신한 그가 지금 여기 있다면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을까?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아들에게 열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온몸을 바쳤기에 열사이지만 그는 윤동주 시인처럼 뛰어난 통찰력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상가이자 기록자였다. 어린 나이에 전문 재단사가 되어서 잘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문 시간에 맞추기 위해 피로 해소제 주사를 놔 밤새 특근을 시키는 무법천지에 소녀들을 차마 버려둘 수 없었던 그는 근로기준법을 독학하고 직접 실태조사에 나섰다. 법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고자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고 근로감독관을 찾아다녔다. 법을 지키면서 이윤을 내는 기업이 가능함을 보여주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투자를 받으러 다닌 사회혁신 기업가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좌절되자 작은 불씨가 되겠다며 스물두 살의 몸을 떠난 그는 지금 노동자의 수호신으로 우리 곁에 있다. 그가 한 노동운동의 핵심은 사랑과 상생이었다.

평생 노동자의 삶을 그려온 노장 켄 로치 감독의 2019년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택배기사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임금 임시 노동자로 전전하던 주인공 리키는 ‘개인사업자’가 되어 재기를 꿈꾼다. 택배회사 관리자는 ‘우리(회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리키가 맺은 계약은 고용계약이 아니라 서비스 제공 계약으로 그는 디지털시대의 신종 노동자, 곧 플랫폼노동자가 된 것이다. 도착 예정 시간을 실시간 담고 있는 택배 단말기의 지시에 따라 배송 시간에 맞추기 위해 소변용 페트병을 사용하고 강도를 당하건, 아들에게 큰 문제가 생기건 배송을 나가야만 하는 그는 ‘직원’이 아니라 ‘자영업자’, 곧 죽게 내버려 두어도 좋은 법 바깥에 있는 존재이다.

택배노동자·초등돌봄 교사…
‘정규직’ 밖 노동자 보호 법안
10만 국민동의 청원 국회 회부
전태일 염원했던 ‘사랑·상생’이
법안에 담아야 할 세계관이다

‘전태일 3법’은 ‘정규직’ 범주 밖에 있는 신종 노동자들을 보호할 법일 것이다. 그리고 이때 노동자 범주에는 가장인 리키만이 아니라 남편이 자영업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노동수단인 차를 팔아야 했던 아내 애비가 있다. 0시간 계약으로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제로아워 계약제 노동자 애비는 차도 없어 버스로 이동하며 하루에 예닐곱 노약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이다. 그녀에게 초과수당은 물론 이동시간수당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지칠 대로 지쳐있지만, 자신만을 기다리는 노인을 위한 ‘영끌 노동’은 끝이 없다. 늪에 빠진 부모의 삶을 간파한 우등생이었던 아들 세브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그라피티 작업에 몰두한다. 끝없이 추락하는 세상을 살리려는 ‘신종 필수노동’의 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법안을 두고 초등돌봄 교사들이 집단 삭발 투쟁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접한다. 이 상황에서 교원단체들은 ‘교사들이 안정적으로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고 한다. 이 반목과 대립은 어디서 오는가? 교사는 돌봄노동을 하는 이들이 아닌가? “모든 국민의 안정적 비정규직화”를 모토로 탈존(脫存)을 넘어서는 공존적이고 창의적인 자율노동의 시대를 열어갈 때가 아닌가? 태생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허망한 노력은 이제 그만 하자. 호모사피엔스가 추구하는 안정성은 서로 돕는 상생의 관계 속에서만 찾아져왔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알아차리게 된 슬기로운 이들이 많을 것이다. 생존과 탈존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는 충분히 했다. 모두가 불안에 가득 찬 ‘위험 사회’에 살고 있음을 인지하고 반목을 거부하고 연대해야 한다. 공생과 상호 돌봄의 노동계를 만들어가는 것, ‘상호 돌봄 기본소득제’를 위한 토대를 까는 것, 이것이 전태일님이 원하는 노동해방 세상을 여는 길이며 ‘전태일 3법’이 담아낼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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