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섬유 옷을 입는 계절

2020.11.06 03:00 입력 2020.11.06 03:01 수정

“찬 바람이 불면, 내가 떠난 줄 아세요”라는 노래가 절로 나오는 계절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떠나긴 어딜 떠나나. 집에 콕 박혀 플리스와 수면 바지를 꺼내 입고 고구마와 귤을 사다 쟁인다. 추운 계절을 맞는 통과의례랄까. 그런데 겨울철 교복처럼 입는 그 옷들은 모두 폴리에스터라는 합성섬유로 만든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화석연료를 가공해 만든 아크릴, 폴리에스터 등 합성섬유는 자연에서 채취한 면, 양모 등보다 훨씬 따뜻하고 가볍고 저렴하다. 세계 최초의 합성섬유인 나일론 스타킹은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질긴 기적의 실’로 칭송받으며 발매 몇 시간 만에 400만켤레가 팔려나갔다. 이제 합성섬유는 스웨터, 등산복, 초극세사 담요는 물론 내복과 팬티의 혼방 섬유로도 사용된다. 의류 10벌 중 약 7벌이 합성섬유로 만들어진다. 저렴한 합성섬유 없이는 패스트 패션 산업도, 동물의 고통이 담긴 모피를 대체하는 비건 털도,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플리스 재킷도 모두 불가능하다.

문제는 합성섬유가 플라스틱의 한 종류라는 점이다. 캐시미어 스웨터에서 양털이, 면 티셔츠에서 면사가 나오듯 합성섬유에서는 합성섬유 보풀이 떨어져 나온다. 즉 합성섬유에서 떨어져 나온 가늘고 긴 미세섬유 역시 미세플라스틱이라는 뜻이다.

미세섬유는 코털보다 얇은 가늘기로 지구를 떠돌며 북극 빙하, 태평양 심해, 남극의 크릴새우, 히말라야 만년설에서도 발견된다. “패션은 스러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던 이브 생 로랑 식으로 말하자면, 패션은 스러지지만 미세섬유는 영원하다.

얼마나 떨어져 나올까. 한 기사에 따르면 1.5㎏의 옷을 세탁할 경우 0.1346g(0.009%)의 미세섬유가 발생한다. 국내 총 세탁량으로 따지면 1년에 1000t이 넘는 미세섬유가 나오는 셈이다. 해외 연구에서는 한 번 세탁할 때 아크릴 스카프에서 30만개, 나일론 양말에서 13만개의 미세섬유가 나왔다. 다행히 국내 하수도 처리시설은 미세플라스틱의 99%를 걸러낼 정도로 효과적이다. 그러나 워낙 많은 양의 하수가 하수처리장에 흘러들기 때문에 단 1%라도 바다로 흘러드는 미세플라스틱 총량은 적지 않다. 세계자연보호연맹은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는 미세플라스틱의 약 35%는 합성섬유에서 나온다고 추산한다.

이 겨울 합성섬유를 포기하고 누빔광목과 울코트를 입으면 좋겠지만 이미 나는 수면 양말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몇 해 전 독일에서 구입한 미세섬유 방지 세탁망에 윤리적 간지가 철철 흐르는 비건 털코트와 페트병을 재활용한 플리스를 넣고 빤다. 해외에선 미세섬유 방지 세탁볼과 세탁기 부착용 필터도 나와 있고, 국내에서도 비슷한 제품들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한 줌의 친환경 ‘실천러’들만 사용하겠지. 프랑스는 2025년부터 새로 출시되는 세탁기에 미세섬유 필터망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합성섬유 라벨에 “미세섬유가 나온다”고 표시하도록 하는 법안이 논의 중이다.

이 겨울, 따뜻한 방한복과 보일러만큼이나 합성섬유의 대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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