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A씨다

2020.11.18 03:00 입력 2020.11.18 03:01 수정

처음 대학 동기와 선배들을 만난 자리는 학교 앞의 작은 술자리였다. 나와는 멀고 이질적인 집단처럼 보이던 ‘○○대학교 ○○학과’는, 고작 20명 남짓 앉아있던 작은 술자리에서 대면으로 만나자 한 명 한 명의 개성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나는 학과 친구들을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개인으로 대할 수 있었다.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 만연한 혐오 표현을 만나며 학교라는 공동체를 잃은 기분이 든 건 조금 지나서의 일이다. 중국인 유학생을 향한 편견 담긴 평가, 학교 본관 앞에서 파업하는 노동자를 앞에 두고 형체도 없는 ‘학교 인풋’만을 걱정하는 이기적인 말들, 총여학생회의 존립 이유를 부정하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들. 나와 같은 캠퍼스를 공유하며 언젠가 옷깃도 스쳤을 사람들의 말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온라인 게시판에 만연한 각종 혐오가 학교의 주류 정서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대학생 시간표 애플리케이션 ‘에브리타임’ 내 사이버불링(온라인 집단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여대 A씨에게도 학교는 서슬 푸른 칼날 같은 곳이었을 테다. 마음의 병으로 위로받을 공간이 필요했던 A씨는 개인적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돌아온 말은 “그냥 죽어” “아무도 네 말 안 궁금해” 따위의 말이었다. 에브리타임의 보수화되고 혐오적인 게시물 성향은 청년참여연대와 유니브페미 등 청년 여성단체들로부터 이미 여러 번 지적받아왔다.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혐오 게시물이 대학의 주류 정서라고 생각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온라인 게시판에서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한 소수자, 약자의 간절한 목소리는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당한다. 지난 2월, 숙명여대 입학을 선언했던 트랜스젠더 B씨를 밀어냈던 것도 온라인상 혐오의 말이었다. 혐오의 말은 누군가의 발화로만 끝나지 않는다. 결국 서울여대의 A씨는 죽음을 선택했고, 숙명여대의 B씨는 입학을 포기했다.

그동안 학교와 플랫폼은 “외부 기업의 게시판일 뿐”이며 “작은 플랫폼이라 관리가 어렵다”는 핑계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공동체가 고민해야 할 혐오의 문제를, 학교와 플랫폼은 책임을 떠넘기며 학생 개인의 문제로만 축소했다. 모두가 손 놓는 사이 세상에 필요한 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목소리는 지워졌다. 영영 기록으로 남을 온라인에는 사회가 인정하는 ‘주류’ 청년만이 발화하고 당당히 걸을 수 있는 ‘정상’ 대학 사회만 남아버렸다.

오프라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약자와 소수자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곳, 누군가에게 그곳은 폭력만이 존재하는 칼날 위일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주류가 아닌 또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다. 이 사회에는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하며, 그 어떤 형태의 차별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합의, 그 선언이 필요하다. 모두가 손 놓는 사이 약자의 상처는 커지고, 우리 사회가 들어야 할 소수자의 호소는 더욱더 작아질 뿐이다.

언젠가 ‘주류’인 누군가도 정상의 밖에 서 있게 될 수 있다. 나 또한 A씨이고 B씨이다. 우리는 모두 A씨, B씨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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