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와 정권, 어느 것을 지킬 것인가

2021.03.29 03:00 입력 2021.03.29 03:05 수정

한국토지주택공사 흔히 LH로 불리는 한 공기업 직원들의 일탈적 투기 행위로 대통령 지지율이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마침 진행 중인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지지율이 여당과 야당 사이 3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불거져 나온 청년들의 공정 문제가 수년간 누적되고 압축되어 드디어 LH 사건에서 폭발한 것이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가까운 재·보선은 물론이고, 멀게는 대선도 영향을 받는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내가 만약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LH 이름을 ‘주거복지공사’ 정도로 바꾸고, 일부 기능은 정부로, 일부는 몇 개의 별도 법인 신설로 분리시킬 것 같다. 한전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민영화와의 타협점으로, 한전에는 송전망인 배전만 남기고 발전은 6개 자회사로 분할했다. 나주의 전력거래소도 형식적으로는 별도 회사다. 가스도 별도 회사고, 지역난방도 역시 별도 회사다. 아무리 공기업이라도 하나의 회사로 너무 커지면 그 안에서 외부 감시가 작동하기 어렵게 되어 아무도 속을 모르는 블랙박스처럼 된다. 형식적으로라도 사장이 별도로 임명되고, 회사별로 인센티브 지급이 달라지면 결국 서로 경쟁을 한다. 정부가 얘기한 ‘해체 수준’이라는 LH에 대한 초기 방침이 행정적으로는 옳았다고 생각한다. 몇 주 논의하다 결과적으로 LH는 그대로 두고, 감시 강화에 약간의 조직 개편 정도로 결론이 나는 것 같다. 정권의 위기는 여기서 폭발한다.

특별히 LH에 대한 편견 없이 사태를 바라보는 청년들 눈에는 이 몇 주 사이에 LH가 정부에 로비를 했든 설득을 했든, 어쨌든 초기 방침이 은근슬쩍 변화한 것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이렇게 국가가 흔들릴 정도로 큰 사건이 벌어졌는데, 며칠 지나고 나니까 결국 기득권 보장으로, 민심은 폭발한다.

‘해체 수준’ 개혁하겠다더니
정부는 ‘3기 신도시’를 이유로
결국 LH의 기득권을 보장했다
민심이, 정권 위기가 폭발한다

한국 주택 공급 체계의 근간은 일본의 일본주택공단과 택지개발공단에서 왔다. 일본은 1981년 주택도시정비공단으로 두 기구를 통합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LH의 역사와 같다. 그 후 1999년 도시기반정비공단으로 바뀌면서 분양 사업에서는 철수하게 된다. 그리고 2004년 도시재생기구로 바뀌면서 현재의 체계가 자리를 잡는다. 임대주택 사업과 도시정비 사업이 일본 정부가 중점을 두는 공공 임무다.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 공기업인 ‘하비타’ 역시 임대주택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갖는 공기업인데, 이게 주택공기업 기본 모델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LH에 해당하는 거대 공룡같이 주택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하는 중앙형 공기업은 이제 한국 외에는 없다. 언젠가는 임대주택과 도시재생 그리고 지역 공기업 체계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그 변화를 조금 먼저 하거나, 형식적인 전환기를 두는 것이 이상한 일일까? 그렇지는 않다. 언젠가는 우리도 이런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전두환 때 만들어진 택지개발촉진법, 소위 ‘택촉법’ 역시 얼마 전까지 폐지를 전제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이라서 가능했던 전격적인 토지 수용과 강제적인 택지 조성, 이제는 너무 폭력적이고 과거적 방식이다. 주민들과 오랜 기간 논의하면서 지역발전의 연장에서 택지에 대한 방법을 정하고, 보상도 주민과의 협의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 방법이다. 택촉법 방식으로 외부에서 도면부터 만들고 나서 형식적으로 주민들 만나는 방식은 어떻게 해도 부작용이 생기고, 결국에는 외지인이 단기 투기를 하게 된다. 택촉법에 기댄 개발 방식,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게 원래 정부 흐름이었다.

임대주택 방식도 그렇다. 정부가 예산을 대고 자체 계획을 세워 임대주택을 진행했으면 5~6%에서 도무지 늘지 않는 지금의 임대주택 양상이 되었겠는가? 택지 개발하면서 땅장사하거나 재건축하면서 남는 돈으로 임대주택 짓는다고 하는 건,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의 주변부적이고 잉여적 방식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민간주택 공급 과정에 끼워넣기, 잉여적 방식으로 임대주택을 대하니까 다른 나라가 임대주택 20~30% 수준에 도달하는 시대에 아직 10% 근처에도 못 가는 것 아닌가? 임대주택과 도시기반이 공공 영역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데도, 택지 개발과 아파트 공급이 우선이고, 임대주택은 잉여적 방식으로 정책을 집행한다. 바꿀 때가 되었다.

3기 신도시는 어떻게? 정부 차원에서 임시 본부 하나 설치해 하기로 한 건 그냥 추진하고, LH는 그것과 상관없이 장기적 계획을 세우면서 개혁하면 된다. 3기 신도시를 해야 하니까 LH는 그대로 두고 가겠다, 이건 꼬리가 몸통을 휘두르는 이상한 자세 아닌가?

국가적 주택 정책에서 3기 신도시는 작은 시책에 불과하다. 여당의 힘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지켜야 하는 게 정권인가? 아니면 LH인가? 왜 개혁을 애써 회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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