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전환기 공무원의 역할

2024.04.07 20:11 입력 2024.04.07 20:17 수정

경제 정책 중에는 좌우 입장과는 별로 상관없는 정책이 있는가 하면 매우 민감한 정책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세 정책이다. 감세 정책은 한국의 우파들이 목숨처럼 지키려 하고, 윤석열 정부는 특별히 더 그렇다. 한국에서 원전은 정치색이 별로 없던 정책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선 거의 개국공신급의 근본적 정책이 되었다. 원전을 찬성하지 않으면 이 정부에선 출세하기 어렵다. 사회적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좌우 구분이 거의 없는 정책이 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선 이념 정책으로 몰려 푸대접을 받고 있다.

1년 전부터 정부에서 하는 일들이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진짜로 할지 말지, 이번 총선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원래 공무원은 정권의 영향을 받으면 안 되지만, 현실이 그렇지는 않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을 맡았던 공무원들이 정권교체 후 곤경에 처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국정과제는 공무원들이 맡고 싶지 않은 정책이 되었다.

꼭 정권이 바뀌어야만 공무원이 불이익을 받는 것도 아니다. 현 정권에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결국 차관급 인사 3명을 동시에 교체하였다. 문제는 대통령이 일으킨 것인데, 책임은 실무진이 지게 되었다. 인사 불이익 정도가 아니라 감사원 감사는 물론 사법처리까지 가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다 보니, 공무원들이 현 정권은 물론 다음 권력의 눈치도 봐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 결과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느림보 행정’이 판을 치게 되었다. 게다가 순환 보직 체계니까, 정치적으로 문제 될 것 같은 자리를 하루빨리 피해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고 하는 양상도 나타난다. 용산에서 관심 갖는 정책을 다뤄야 하는 부서는 부처 내에서 이제 ‘험지’이고 기피 부서다.

‘적극 행정’ 유행 속 현실은 복지부동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이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도록 하자는 논의는 IMF 외환위기 직후 한동안 유행했다. 누가 정책을 검토하고 입안했는지를 적극적으로 남겨서 책임지게 하자는 정책실명제 논의가 있었다. 도대체 누가 무엇을 잘못해서 전 국민이 외환위기 같은 큰 재앙을 만나게 되었는지 밝히자는 취지였다. 그렇지만 잘못된 정책이 처벌을 받는 제도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지금도 과정상 편법이나 불법에 대해 처벌을 하지, 정책의 잘잘못으로 처벌을 하지는 않는다.

요즘 행정학에서는 ‘적극 행정’이라는 용어가 유행이다. 처음 벌이는 일을 제도화하거나 남들이 안 했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다 보면 규정이나 제도가 미비해 피치 못하게 편법이 벌어지게 된다. 이런 것을 적극 행정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해석하고, 뇌물 등 악성 불법이 아닌 사소한 편법 정도는 처벌하지 말고 넘어가자는 의미다. 과거의 모든 것을 먼지 털듯 털어내던 감사행정에서도 적극 행정 개념을 도입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이건 학술 차원에서의 논의이고, 현실은 과거식으로 표현하면 ‘복지부동’에 더욱더 가까워졌다.

한국은 공무원의 정치 참여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프랑스나 독일은 공무원의 정치 참여가 폭넓게 허용되고, 다만 자신의 직무에 대해서만 중립성과 공정성의 의무가 요구된다. 미국은 폭넓은 자유를 규정하는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특수한 신분의 사람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을 제한할 수 없다. 유럽만큼은 아니더라도 공무원의 일정한 정치 행위가 가능하다. 우리는 너무 기계적으로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데,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 군사정권 시대의 엄격한 잣대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자연인으로서 정치적 소신을 갖는 것과, 정부 방침에 따라 공정한 행정을 하는 것이 충돌하지는 않을 정도로 사회가 발전했다.

공직자들 ‘국민만 보고 간다’ 필요

4·10 총선 결과에 따라 정책 환경이 요동칠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이 국회선진화법을 넘어설 수 있는 180석을 차지하지 않는 이상, 여당이 일방적으로 법을 통과시킬 수 없는 것은 지금과 마찬가지다.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 입법 환경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대통령 스타일상 야당과의 대화와 협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적 격변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럴 때 직업 관료들이라도 정부 시스템을 정상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한국이 지금의 경제위기를 넘어갈 수 있다. 고물가, 세수 부족, 산업 경쟁력 확보 등 시급한 문제들이 많다. 많은 정치인들이 습관적으로 “국민만 보고 간다”고 말한다. 지금의 공무원들이야말로 “국민만 보고 간다”면서 일해야 할 시기다. 언젠가 국민들이 진심으로 공무원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이 오기를 희망한다.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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