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보도사진 한 장이 장안의 화제였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서울역에서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을 기다리고 있던 사진기자가 역광장에서 장면 하나를 포착했다. 신사 한 분이 노숙인에게 다가가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와 장갑을 벗어주고 돈까지 쥐여주는 모습이었다. 기자는 무엇에 홀린 듯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기자가 신문사로 전송한 사진이 인터넷판에 오르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한 장의 사진이 겨울 한파를 일거에 날려버렸다. 신사에게 외투와 장갑을 받은 건 노숙인 한 사람이었지만, 그로 인해 따뜻함을 느낀 건 수천, 수만의 시민들이었다. 그와 함께 산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최준영‘책고집’ 대표

최준영‘책고집’ 대표

그로부터 사흘 뒤 작은도서관 ‘책고집’으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대전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는 걸 봐서 대전역 주변에서 인문학 강좌를 들었던 내 친구(인문학 강좌로 만나 교류하고 있는 젊은 노숙인)가 보낸 게 아닐까 상상했다. 뜯어보니 다른 사람이 보낸 것이었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손글씨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성스럽게 쓴 글자가 편지지 네 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실로 구구한 사연이 담겨 있었는데, 결론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젊어 한때 실수로 교도소에 들어갔고, 무려 18년6개월을 복역한 뒤 지난해 말에 출소했다. 가진 돈 전부를 털어서 고시원에 ‘달방’(보증금 없는 월세방)을 얻었더니 밥 먹을 돈이 없다. 석방된 지 스무날이 넘었는데 밥이라곤 딱 두 끼를 먹었을 뿐이다. 대전역 근처에 쓰러져 있다가 우연히 집어 든 잡지에서 ‘최준영’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교도소에 있을 때 교도관이 건네준 책을 통해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을 알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역무원에게 어렵사리 스마트폰을 빌린 뒤 ‘책고집’을 검색해 주소를 알아냈다. 도와주면, 기필코 일어서겠다. 고마움 잊지 않겠다.

편지지의 끄트머리에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지체없이 그 계좌로 돈을 보냈다. 아껴 쓴다면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을까 싶을 만큼이었다. 이것저것 따지며 깊게 생각했다면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보내야 할 결정적 이유는 없었다. 보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수두룩했다. 혹시 전문 꾼이 아닐까, 나쁜 버릇만 들게 하는 건 아닐까? 이렇게 도와준들 얼마나 도움이 될까? 오히려 자활의 의지만 꺾어버리는 건 아닐까? 밥값이 아니라 술값을 보태는 건 아닐까? 다행히도, 쓰나미처럼 밀려든 잡념들은 죄다 돈을 보내고 난 뒤에야 들이닥쳤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런 글을 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만 모르게 하고, 세상 모두에게는 부지런히 알리는 중이다. 딴엔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었노라고, 내가 이리도 대범한 사람이라고. 아무려나 나는 요즘 즐겁고 설렌다. 언젠가 그에게서 연락이 올 것만 같다. 불쑥 내 앞에 나타나서 그동안 돈 좀 벌었다며 한턱내겠다고 말할 것만 같다. 즐거운 상상이다. 이미 충분한 대가를 받은 셈이다.

즐거운 상상이 즐거운 일상을 만든다. 나의 즐거운 상상이 또 다른 누군가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우울증을 14일 만에 극복하려거든, 한 사람을 정해서 매일 그 사람을 어떻게 기쁘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까를 생각하는 것이 곧 사랑의 시작이고, 성장의 시작이며, 뜻하지 않게 자기 안의 우울증을 극복할 비결이다. 심리학자 아들러의 말이다.

사람은 ‘사람(人)+사이(間)’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이에 존재한다. 사이는 관계다.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이웃이다. 이웃이 있어 우리는 비로소 사람이다. “사실 사람들은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커다란 고통도 참아낸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데 온 힘을 쏟는다.”(<휴먼카인드>, 243쪽) 그걸 외면하지 말자고,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그리도 방대한 책을 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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