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의료의 문법’을 이해할 때

대학병원에서 응급의학과 교수를 하는 친구가 내가 일하는 곳의 방문진료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 그녀는 응급의료자원이 정말로 필요한 환자들에게 적절하게 쓰이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고 했다. 나도 또한 방문진료를 통해 사람들이 불필요하거나 과도하게 응급실을 방문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마을에서 하고 있으니, 일하는 직장의 심급은 달라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었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마을에서 임종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얘기하다가, ‘응급실’에 대한 감각이 의사인 우리 둘 사이에서도 너무 다르다는 것에 놀랐다. 나는 환자분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시는 분들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힘들어하실 때는 ‘응급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분들은 ‘응급실’에 오시지 않는 게 맞다고 했다. 응급실은, 특히나 대학병원의 응급실은 들어서는 순간 “모든 가능한 치료를 해주세요, 얼른이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요로감염이 심해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의뢰했던 방광암 말기의 환자분이 떠올랐다. 그 대학병원에서 방광암을 진단받았으니, 요로감염도 그곳 응급실에서 진단받고 치료받고 돌아오시는 것이 좋을 줄 알았는데, 코로나19로 상황은 꼬이고 꼬여 열이 나는 90대 중환자로 분류되어 빈 격리병상을 찾아 전혀 관계없는 다른 대학병원 응급실로 모셔졌다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힘든 과정을 겪어야 했다.

아, 언어가 다르구나. 아니, 문법이 다른 건가. 의사인 우리 둘 사이에서도 그렇게 달랐으니 일반 환자들과의 사이에선 얼마나 다를 건가. 이 다른 언어 문법이 예상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의료이용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나는 지적장애인들의 공동생활시설인 은평재활원에서 촉탁의로도 일하고 있다. 촉탁의는 외부의 전문가이면서,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시설 이용인)들의 주치의이기도 하다. 요즘 이 시설에서는 이용인들의 정신과 약물을 줄여보자는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 당사자 장애인과 살림의원의 정신과 전문의를 포함해 모든 시설 직원들이 약이 아닌 다른 방식의 케어를 찾아 험난한 항해 중이다.

사실 의미없이 처방되기 시작한 약들은 없는데, 애초에 정신과 약이 처방된 순간을 뒤져서 발굴해나가면 이런 얘기들이 등장한다. “재호씨가 응수씨를 세게 밀어 넘어지면서 응수씨 무르팍이 까졌어요” “지난주에는 재호씨가 직원의 다리를 깨물고 놓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던 끝에 어떤 조언을 얻고자 재호씨가 정신과에 가게 되면 약이 새롭게 처방되었던 것이다. 시설의 입장에선 꼭 약을 처방해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 상황을 해결할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했을 뿐일 수 있다.

정신과 전문의도 손쉽고자 약을 처방하는 것이 아니다. 재호씨를 모시고 온 직원에게 이런 얘기들을 들으면, 정신과 전문의들은 대부분 공격성을 완화하고 진정시키는 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을 쓸 게 아니라면 왜 이런 이야기를 정신과에 와서 하겠는가, 시설 내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가 안 되니, 약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정신과에 와서 호소하는 것 아닌가. 이 상황에 책임감을 느끼고 개입해 해결하려다 보니 약을 처방한다.

약은 줄이는 것이 늘리는 것보다 힘들다. 약을 끊고도 좋은 케어가 가능하리라는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당초 문법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무엇이 최상의 케어인지 서로 얘기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정신과 약을 줄이면서 이용인들이 다치거나 자해가 심해지는 경우도 생기고, 수면이나 밸런스가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험난한 항해를 지속해 나가는 힘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이제야 서로의 말을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한 희열에서 오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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