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제도는 죄가 없다

2021.05.24 03:00 입력 2021.05.24 03:01 수정

1997년에 개봉된 <넘버3>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서 “죄가 무슨 죄가 있냐, 죄지은 놈이 나쁜 놈이지”라는 대사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고위공직자 인선과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인사청문제도가 무슨 죄가 있냐,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지”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조진만 덕성여대 사회과학부 정치외교학전공 교수

조진만 덕성여대 사회과학부 정치외교학전공 교수

정치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는 쉽지 않다. 권력의 끝은 항상 허망하고 냉정하다. 대통령이 임기 초와 달리 고위공직자를 인선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도 사사건건 더 격렬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청문제도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 폐지하거나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정말 그런 것인가? 어디 한번 따져보자.

인사청문제도는 나쁜 제도인가? 그렇지 않다. 나쁜 제도가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채택되고 유지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인사청문제도는 대통령의 자의적인 인사를 국회가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제왕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인사권을 마음대로 행사할 경우 시끄럽고 피곤한 인사청문회보다 더 큰 문제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인사청문제도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20년 이상 유지되고, 그 대상이 확대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제도를 없애거나 보완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 명분이 약하다.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제시한 여러 가지 인사청문회 개선방안이 제대로 된 효과를 끌어낼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그럼 인사청문회라는 좋은 제도가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일단 모든 인사의 궁극적인 책임은 인사권자에게 있다.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고위공직자 인사를 하든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집중된다. 이것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운명이다. 사실 대통령이 자질과 능력이 뛰어난 고위공직자를 인선한다면 인사청문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대부분 해결된다. 인사청문회 때문에 후보자를 찾기 힘들다는 대통령의 호소도 충분한 공감을 얻기 힘들다. 자질과 능력을 갖춘 고위공직 후보자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국민에게 자신 있게 제시하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고 역량이기 때문이다. 만약 도덕성에 흠결이 있지만 꼭 필요한 인물이라면 대통령이 그 사안을 밝히고 적극적으로 국회와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임기 초반 고위공직 후보자 인선에 대한 설명과 당부를 하던 대통령의 모습을 임기가 지나면서 보기 힘들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를 인선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비서진의 도움을 받는다. 청와대 비서진이 사전 검증을 소홀히 하여 대통령에게 잘못된 보고를 올렸거나, 문제가 많은 후보자를 인선하고자 하는 대통령에게 충언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문제다. 보통 시민들의 눈에도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고위공직자를 걸러내는 작업은 사전 검증을 담당하는 청와대 비서진의 몫이다.

국회의원들도 자질과 능력이 부족한 고위공직 후보자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인사청문회가 정파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인사청문회가 정파적으로 진행되는 이유는 분명하게 문제가 있는 고위공직 후보자에 대해서도 여야 국회의원이 다른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대통령과 행정부를 삼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견제하는 길이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국회가 국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점차 그 위상이 약해지는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고위공직의 요청을 받은 인사들의 처신도 중요하다. 인사청문회에서 논란의 소지는 고위공직 후보자로부터 기인한다. 자신이 과연 몇 번째로 고위공직 후보자로 고려된 것인지 확인하시라. 순번이 한참 뒤라면 이미 자신보다 자질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도 사양하였다는 점을 상기하시라. 고위공직자로서의 무게와 책임을 감당할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다면 욕심부리지 말고 고사(固辭)하는 것이 양심이고 미덕이다. 그래야 철저하게 준비된 사람이 대통령의 선택을 받아 고위공직자에 올라갈 수 길이 더 많이 열리게 된다.

인사청문제도 자체에 대한 논란보다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는 일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 인사청문제도는 죄가 없다. 이와 관련된 사람들이 운용을 잘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말도 못하는 인사청문제도의 억울함이 풀리는 시기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인사청문제도가 무죄라는 점이 인정될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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